우리가 하느님의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어야만 하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중풍 병자를 고쳐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 (마르 2,10)을 보여주십니다. 중풍 병이 고쳐지는 것도 성령의 힘이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성령께서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사람에게도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주어질 수 있음을 명확히 하십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하느님께서 당신 살과 피, 곧 당신 생명을 직접 양식으로 주실 수 있다거나
혹은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까지는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교회에, 혹은 인간에게 ‘많이’ 주시기는 하지만 ‘다’ 주신다고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는 하느님을 온전하지 못한 부모로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율법 학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말은 겸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다 주지 않고 어떤 것은 제한해서 준다면 자녀는 부모의 진정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다 받았다고 믿어야 부모처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못하여 그 못 받은 것을 더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덜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덜 주어도 된다고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만약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에 주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교회는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어차피 자신이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지 못했다고 믿으면 교회는 이웃의 죄를 용서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처럼 되지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덜 받았다고 믿었고 그래서 선악과를 바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하느님처럼 되는 길이 막혔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여 자신도 자녀를 칭찬할 줄 모르는 엄마가 나옵니다.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이는 엄마를 아줌마라 부르고 새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받아야 줄 수 있는데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자신도 못 받았으니 그렇게 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합리화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덜 받는 만큼 덜 인간이 됩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내어주는 일이 용서입니다.
부모로부터 덜 받았다고 믿는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여깁니다.
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 받은 자녀는 자신이 다 받았기에 용서하지 않으면 이율배반이 되기에 형제를 다 용서합니다.
전에 눈 큰 콤플렉스를 가진 여인이 이무석 박사를 찾아온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을 두고 술집 여자와 바람을 피운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았다고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쌍꺼풀이 있는 자기 동생을 더 사랑하고 눈이 작은 자신은 덜 사랑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녀가 꿈을 꾸었을 때 남편과 바람을 피운 여자의 눈이 엄청나게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덜 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덜 사랑하는 것을 그 믿음으로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완전한 사랑이 되려면 다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아들에게도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 고유의 권한이 주어져야만 했는지를 강조하셨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지 못하면 하느님의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없고 그리면 하느님처럼 되지 못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으셨음을 아셨습니다(요한 3,35; 13,3 참조).
그래서 온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모든 것을 받으셨기에 모든 것을 내어놓으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만큼만 줄 수 있고 그만큼만 하느님을 닮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목숨까지 내어놓습니다. 그러려면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면서도 혹은 고해성사를 받으면서도 부족하게 받았다고 느낀다면 더는 하느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항상 나는 하느님의 모든 권한을 다 받은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시다.
그래야 하느님을 빨리 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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