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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1-10 조회수 : 592

표징 없는 가르침은 진리일 수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율법 학자들과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 권위란 세속적인 자격증을 의미하지 않고 성령의 힘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성령으로 이루는 일을 ‘표징’이라 칭합니다.
표징이 따르는 가르침이라야 진리입니다.
표징이 가르침을 진리로 만드는 권위입니다. 
 
그렇다면 율법 학자들이 가르치는 것들은 진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율법은 그러면 진리가 아닐까요? 십계명은 진리일까요, 아닐까요?
누구에게는 진리가 되고 누구에게는 율법으로 머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요한 1,17)
이 말씀을 따르자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아직은 진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은총으로 표징이 따라야 그 같은 가르침이 진리가 됩니다. 
 
율법은 아직 밀과 같아서 물과 불, 그리고 소금으로 빵이 되지 않으면 진리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학자들은 아무리 율법을 가르쳐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진리로 만드시는 그리스도를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표징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꼭 기적을 행해야만 표징이 아닙니다.
가장 큰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만큼 큰 표징은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표징을 보여주었습니다. 
 
표징이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일인데 요한의 삶은 ‘인간이라면 저럴 수 있을까?’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요한이 마귀 들렸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누구에게나 표징을 베푸는 가장 큰 스승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공통된 ‘어머니’란 스승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항상 세례자 요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가르침은 가슴에 새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사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친 교사들을 전수 조사해서 ‘위대한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처칠은 신문사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짤막한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귀 신문사에서는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는 제 인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신학기인데도 선생님이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무료한지 여럿이 모여 모래 쌓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노인이 안타까운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어디에 계신 줄 아느냐?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들 가거라.
그대들을 맞으러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자네들을 가르쳐줄 선생님이야.” 
 
만약 저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의 표징이 없다면 저는 그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구약의 율법을 되풀이해서 신자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에 불과할 것입니다.
제 가르침에는 진리가 없을 것입니다.
권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가르침이 구원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내가 변하고 이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그 가르침이 자녀에게 진리로 스며듭니다.  
 
나 자신이 성령의 은총으로 변화되고 표징을 일으킬 수 있을 때 가르침의 내용도 조금은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52)
그러니까 분명 구약의 율법과 같은 가르침이긴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권위를 뒷받침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마르 1,27)라고 놀라는 것입니다.
권위는 표징을 말하고 그 표징은 자기가 가르치는 것에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님은 가르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내용이 달랐다기보다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성적을 올리려는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현재를 즐기라 하고 변화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어쨌건 아이들에게는 참된 선생님이었습니다. 표징은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가르침을 주었기에 하느님 눈에는 하느님 나라 율법 학자입니다.  
 
예전에 EBS에서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하였습니다.
한 여 선생님은 아이들도 싫고 학교 오기도 싫습니다.
결국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선생님으로 사는 것조차 맛을 잃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오는 아이들을 안아줍니다.
이러한 표징을 통해 같은 가르침이지만 아이들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전에는 선생님이 도깨비 같다고 하고 악마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면 가르침도 바뀝니다. 새로워집니다.
사람을 바꾸는 가르침이 됩니다.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무장하여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며 가르침에 합당한 표징도 일으키는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 학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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