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할 때 하느님 체험을 가장 많이 하는 이유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께서 누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 남았습니다. 바로 ‘경배’의 조건입니다.
지금까지 한 주일 동안 묵상한 것을 다 잊어버려도 오늘 것만 기억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경배’에 모든 조건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경배하다’란 단어는 ‘프로스퀴네오’인데, 직역하면 ‘~ 앞에서 무릎을 꿇다’란 뜻입니다.
전에도 체나콜로에서 만난 페데리코 청년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체나콜로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간곡한 청으로 세 달면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으로 미사 때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거의 마지막 미사에서 자신도 무릎을 꿇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때 체험한 느낌은 ‘평화’ 자체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그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
그렇게도 나가고 싶었던 공동체에 3년 이상 머물고 있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찬미하려는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실까요? 단순합니다.
당신을 하느님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자신을 의사로 인정하는 이에게 의사가 됩니다.
한 번은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이러저러한 것을 의사 앞에서 아는 척을 했더니 의사는 당신이 의사냐며 그러면 왜 찾아왔느냐는 듯이 기분 나빠했습니다.
그러면 그 의사의 능력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져왔습니다.
황금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황금을 봉헌한다는 말은 그 사람을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이에게 모든 것의 주인으로 드러내 보이십니다.
곧 십일조로 주님을 찬미하는 이에게 당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해 더 많은 은총을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유향은 ‘기도’입니다. 이 말은 당신을 하느님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이에게 하느님으로 드러내십니다.
곧 당신의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몰약은 ‘죽음’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으려면 그 상대가 생명이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인정할 때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동시에 봉헌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우리가 다윗처럼 우리 자신을 버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주님을 찬양할 때입니다.
다윗이 은총을 받고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찬양으로 환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찬양에서 주님을 만난 것은 남들이 찬양할 때 졸면서였습니다.
신학생 때 창세기 연수에 들어가서 남들 찬양할 때 졸고 있었습니다.
그때 “갈 길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우리들, 어둡고 컴컴한 곳에 갇혀 있던 우리들.
하느님이 어딨냐며 대들던 우리들. 알려고만 했을 뿐 느끼지 못했던 우리들…. ” 이런 가사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저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처음으로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다시 받고 싶어서 지금도 찬양을 부릅니다.
개신교에서는 당연히 찬양할 때 하느님 체험을 가장 많이 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찬양을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붓습니다. 이것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아직도 그레고리안이나 모차르트의 곡에 가사를 붙여 부릅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새롭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신자들 하느님 체험을 위해 주님을 경배하는 분위기를 더 많이 더 자주 더 정성껏 조성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말로만 주님을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고백해봅시다. 그러면 주님을 만납니다.
지식채널e에서 ‘엄마가 울었다’의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한 중학교에서 부모님을 30일 동안 칭찬하고 일기를 쓰고 오라는 실험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나중엔 부모님의 보지 못하던 면을 보고 집이 행복한 곳이 되었다는 줄거리입니다.
한 아이의 일기는 이렇습니다.
“난 엄마 아빠와 같이 산다. 너무 당연한가? 우린 같이 산 지 얼마 안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엄마 아빠는 오랫동안 같이 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돌아오셨다.
난 너무 기쁘다.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실 때 ‘엄마가 만든 음식, 매일 먹으니까 행복해요’ 엄마가 울었다.
‘엄마, 왜 울어요?’ ‘아, 양파 때문에 그래.’ 나도 양파 때문에 눈물이 났다.”
자녀가 부모를 칭찬하는 것과 우리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같습니다.
부모를 칭찬하니 부모의 참모습을 보게 된 자녀들과 같이 우리도 하느님을 찬양하면
하느님의 참모습을 뵈옵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에 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먼저 억지로라도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모를 칭찬해 드리세요.
그분들의 진정한 면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이 당신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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