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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1-02 조회수 : 567

내가 하는 일에 주저함 없이 오래 지속하려면 
 
 
제가 이번에 쓴 ‘나는 왜 교회를 믿는가?’란 책은 저의 네 번째 책입니다.
제가 책을 계속 내니까 주위 사제들은 ‘나는 언제 책을 한 번 내보나?’라며 한탄 섞인 말을 합니다. 
 
정말 책을 낸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이 벌거벗겨져 심판을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도 인터넷에 강론은 썼지만 책을 낼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구청에 들어가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교구장 주교님께서 저를 볼 때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많으니까 모아서 빨리 강론집 하나 내라고 독촉하셨습니다. 
 
사실 이미 써 놓은 것들을 모아서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한 권 꾸며서 인쇄되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만약 주교님이 그렇게 독촉하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더 완벽한 첫 책을 내기 위해
고민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이번 책이 나왔을 때 한 권을 들고 주교님께 갔을 때 주교님께서는 “첫 책을 내니까, 그 다음부터는 쉽지?”라며 웃으셨습니다.
주저하는 저에게 갈 길을 알려주셔서 계속 열매들이 맺게 해 주신 주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누가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하고 명령을 하면 간섭하는 소리처럼 들리고 자유를 빼앗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애당초 우리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나에게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원죄입니다. 
내 안의 그 본성이 에덴동산의 뱀과 같기 때문입니다. 
 
‘해도 되나, 안 해야 하나?’를 끊임없이 오가며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이때 하느님의 명령은 그 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해방의 계명이 됩니다. 
 
어떤 명령이 주님의 명령으로 여겨진다면 그다음부터는 주저함이 없어지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내 뜻일 때는 확고하지 못하고 주님의 뜻이라고 믿을 때는 주저함이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보낸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어떤 권한으로 세례를 주느냐고 따집니다.
그들에겐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 유다인들에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나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요한은 역시 그런 예언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러니 그들의 방해공작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성소에 대한 확신은 바로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고 하는 ‘겸손’에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교만이기에, 주님의 뜻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겸손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묻습니다.
나의 생각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주교님이 책을 내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전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요.”라고 말했다면 교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만함이 책 한 권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겸손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 몇 권이라도 열매를 맺게 된 데는 제 생각을 접고 주님의 뜻이라 믿어지는 목소리를 따랐던 작은 겸손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첫 세 권의 주일복음 묵상집을 내면서 강의 다닐 때마다 보따리장수처럼 책들을 팔기 위해 들고 다녔습니다. 
 
이전에 강의하며 책을 파시는 신부님들에 대해 다른 신부님들이나 신자분들이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을 익히 들었던 터라 제 차에 책을 싣고 다니며 판매까지 하는 것은 스스로 매우 수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수원교구 하상 출판사는 판매를 위한 통로가 부족한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며 직접 팔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팔려야 다른 큰 출판사의 인터넷 서점 등에서 올려놓고 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아예 인터넷 서점이 있는 출판사에서 출판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에 대한 확신을 더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처지가 어쩔 수 없이 되니 ‘이게 주님의 뜻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림특강 중 책을 싸인하여 열심히 들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상한 시선을 보이기도 하고, 저 또한 ‘왜 책을 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 때도 있지만 이전처럼 창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아버지가 창피를 무릅쓰고 장사하는 느낌을 받으며 저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뿌듯했습니다. 
 
아예 강의 중 더 떳떳하게 책 팔러 왔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보따리장수를 하는 것이 이전처럼 지치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당신들이 가시는 길에 대한 매우 큰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끈기가 있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작은 열매라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에 더 큰 확신을 지닐 수 있도록 항상 기도 안에서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갖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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