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2-24 조회수 : 543

다 받은 사람이 되게 하시려 오신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은 천사들의 알림을 통해 예수님 탄생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성탄은 무엇이었을까요? 삶을 바꿔주는 놀라운 기쁜 소식이었을까요?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고통이고 여전히 어둠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욱 혹독한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는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외부 환경을 변화시켜주지는 못하지만, 이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줍니다. 
 
만약 어둠이 없다면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어둠 속에서만 빛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둠이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내가 미운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것이 사람이건 사회이건 나라이건 세상이건 상관없습니다.
내가 용서하려면 그것들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럼 계속 미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 어둠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더는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됩니다.  
 
최보기 작가의 ‘국수가 우습니?’란 글입니다. 
엊그제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있는 부천시에 취재하러 갈 일이 있었다.
오후 2시 가까운 시각이었는데 약속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는 데다 마침 점심을 거른 터라 간단한 분식 정도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40년 전통 온달 할매국수’란 조그만 간판에서 왠지 모를 내공이 느껴져 그 집으로 향했다.
간판에 쓰인 대로 80세가 넘은 것 같은 백발의 할머니가 주방에서 국수를 끓이고 있었는데
텅 빈 홀임에도 불구하고 손길이 무척 바쁜 게 이상했다. 
주방에 주문을 전달한 사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손님, 죄송한데요. 잠시 후면 예약된 단체 손님들이 몰려오실 텐데 괜찮을까요?”
“뭐 어때서요? 식당에 단체 손님 오면 좋은 것 아닌가요?”
“그게요….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그냥 드시는 분들이라서….”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얼른 이해가 안 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잔치국수 한 그릇 먹는데 뭐 이거저거 따질 필요는 없으니까.  
 
가벼운 생각으로 후룩후룩 국수를 먹는데 주방의 할머니가 사내에게 “이제 들오시라고 해”라고 하자 사내가 문밖으로 목을 내밀더니 “들어들 오세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일군의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그들은 잠시 전 식당에 들어올 때 봤던, 빈터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모두가 중장년과 어르신들이었는데 살기 넉넉한 사람들은 아닌 것이 남루한 행색들에서 금방 드러났다.
눈치가 9단이라 절에서 새우젓 얻어먹을 위인인 내가 척 보기에 노숙인이나 가난한 분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급식임이 분명했다. 
 
‘아, 그래서 그런 질문을….’
카운터에서 국숫값을 계산하던 나는 기자다운 호기심이 생겨 사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혹시 무료 급식을 하시는 건가요?”
“아, 네…. 정확히 말하면 무료는 아닙니다.”
“그럼 돈을 받는 건가요?”
“그게…. 후원을 받는 거라서….”
“아, 독지가가 계시군요. 날마다 이렇게 하시나요?”
“네, 일요일은 저희도 쉬어야 해서 일요일은 닫습니다.”
“누가 후원을 하는 거예요?” 
 
사내가 잠시 나를 쳐다봤다. ‘누구신데 이렇게 질문을 꼬치꼬치 하시는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저, 실은 제가 신문사 기자예요. 이런 일을 보면 꼭 사정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직업병이라서요.”
“아, 기자분이세요? 전 또….” 사내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한 10년 전쯤 일이었어요. 그때는 어머니 혼자서 이 식당을 했었죠. 지금은 제가 식당을 물려받기 위해 같이 있고요.
어느 추운 날 오후 늦게 옷을 반듯이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와 칼국수를 시켰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국수를 다 먹은 후에 냅다 도망을 쳤대요. 골목 입구에 파출소가 있으니까
더 다급하게 도망을 치더랍니다. 
 
어머니는 젊은 사람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어 오히려 저러다 넘어져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한 달 후쯤 행색이 초라한 남자가 오후 늦게 들어와 칼국수를 주문하는데 딱 봐도 그때 그 남자였답니다.
어머니는 모른 척하며 칼국수를 내주었죠.
국수 양도 곱빼기로 푸짐하게 넣고, 김치도 큰 사발에 담았답니다.
가만히 보자니 국수 먹는 모습이 몹시 불안해 보여 이번에도 또 도망칠 것이 뻔해 보였답니다. 
 
어머니는 그 남자가 국수를 거의 다 먹었을 때 사내 눈에 안 띄도록 주방에 앉아
‘이번에는 뛰지 말고 그냥 걸어가, 괜찮아. 살다 보면 다 그럴 때가 있어’ 하시고는 화장실 가는 척 주방 뒷문으로 나가셨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오니 사내가 안 보이더랍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8년도 지난 재작년 어느 날 풍채가 눈에 띄게 좋은 남자가 양복을 번듯하게 차려입고 들어와 칼국수를 주문했답니다. 
국수를 다 먹은 사내가 주방에 계신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여기 막 나올 때라 잘 알죠.” 
 
“어르신,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지요?”
주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이 사람이 누군고?’ 하는 표정이셨습니다.
“글쎄요. 모르겄는디라?”
“제가 실은 8년 전 겨울에 여기서 칼국수를 먹고 두 번이나 도망쳤던 사람입니다. 오늘 국숫값 갚으러 왔습니다.”
“아…. 허허허, 그런 분들이 한둘이어야지라…. 뭐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제가 그때 두 번째 왔을 때 어르신께서 국수를 다 먹기를 기다리시다가 ‘뛰지 말고 걸어가라. 몸 다칠라.
그럴 때가 있지’라고 허공에다 말씀하시며 자리를 슬쩍 비우셨던 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그 말씀 때문에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인천에서 가구공장을 하던 그 사내는 뜻밖의 부도를 크게 맞아 경찰과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신세였는데 그날 하도 배가 고파 어머니 혼자서 운영하는 식당을 골라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부도 문제가 해결이 잘 돼 다시 재기할 기회를 얻었고, 죽을힘을 다한 결과 오히려 부도 전보다 회사를 키우는 데 성공을 거둬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어르신, 비용은 제가 능력 되는 날까지 매달 댈 테니 십 년 전 그때 저처럼 배고픈 사람들에게
국수를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돈까지 대신 낸다는데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걸 거절하겄소.
나도 이제 죽으면 극락에 가고 싶소. 재료비 원가만 대시오.” 
 
그런 인연으로 시작해 오후 2시가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국수를 끓여준 지 벌써 2년이 됐는데, 오는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하루 서른 명 선을 유지하는 질서까지 생겨났다고 했다. 
   [출처: ‘국수가 우습니?’, 최보기 작가, 블로그 ‘최보기의 책보기’] 
 
하루에 같은 죄를 490번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저지르는 잘못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용서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 용서는 어떤 힘으로 이루어질까요? 바로 자신도 부모로부터 용서받으며 자란 사람이고
자신이 부모로서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위 이야기에서 국수를 먹고 도망쳤던 그 사람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용서를 받고 나서는 이제 용서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미 용서받은 것입니다. 
 
오늘 목자들에게 세상은 비정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은혜로운 곳이 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변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신비이고 성탄을 맞는 자세입니다. 믿음의 변화.  
 
하느님을 받으면 다 받은 것입니다. 
다 받은 사람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구유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그분께서 우리 것이 되러 오셨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