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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2-14 조회수 : 612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어떤 분들은 사제로, 또 수녀님으로 수십 년 사셨어도 아직도 당신의 성소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부르심대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계속 자신의 성소가 혹 결혼 성소가 아닐까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소명(성소, 거룩한 부르심)과 선택이 굳건해지도록 애쓰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2베드 1,10) 
 
성소는 결코 죽기까지 찾아가야 할 무엇이 아닙니다.
지금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만약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결혼한 신자가, ‘내 성소는 이게 아니었나보다.’ 혹은 성소자가, ‘내 성소는 결혼 성소인가보다.’라고 한다면  결코 온전히 자신의 길을 확고하게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는 성소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겼으니 성소가 없는 것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유다를 사도로 직접 부르셨고 뽑으셨습니다. 
 
그 성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바로 부르심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응답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계속 성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죽기까지 흔들리기만 하다가 끝나버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첫 기억이 조부모님의 죽음으로 시작하게 하여 제가 평생 행복이란 것을 찾도록 섭리해주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원하다가 나중엔 사제의 길이 참 행복임을 깨닫고 이 길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소에 확신이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고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후회나 흔들려본 적이 없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확신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의심 없이 믿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만약 커서도 계속 ‘부모님이 정말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오신 걸까?’라고 의심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우면 그 농담이 진담처럼 들려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참 부모님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확신이 가능할까요?
바로 살아오면서 나에게 해 주었던 사랑과 주위 사람들의 증언 등을 생각해보면 꼭 눈으로 보지 못했더라도 어떤 확신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제야 부모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던 요한이나 안드레아과 같은 이들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고한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요한은 직접 가서 그 분이 참 메시아인지를 여쭈어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 기적을 보여주시고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이 말씀은 요한이 의심을 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즉, 제자들을 보내어 직접 예수님을 만나보고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들어보게 하여 그들에게 확신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여러 가지를 묵상해보고 저절로
부모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믿음이 올 수 없고 그렇다면 세상살이는 매우 힘들어지게 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삶의 힘이지만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제 생각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성소는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배반하게 될 유다를 왜 뽑으셨겠습니까? 
 
단 한 가지 이유는 유다가 사도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고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만큼 그 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흔들릴 필요 없이 자신의 성소에 대해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어떤 제자가 될 것인지만 신경 쓰고 노력하면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하거나 독신으로 사시는 분들 또한 그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누가 어떤 길을 가던지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은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당신께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구체적인 성소에 대한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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