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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2-09 조회수 : 691

세례자 요한과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꼭 먼저 지녀야 하는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꿈쩍도 하지 않는 세대를 비판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왜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까요?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원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원하게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 
 
사람들은 지혜가 없기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하고 말하고 아드님께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가고 그분의 말씀에 흔들리고 춤을 추고 곡도 하기 위해서는 ‘지혜’를 갖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킹덤’(2019)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배경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던 노예 ‘신’은 진나라의 천하대장군을 직접 마주하고는 꿈을 꾸게 됩니다. 바로 자신도 대장군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노예 신분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신은 꿈을 꾸게 됩니다. 
 
저도 죄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느님 자녀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커다란 자기와의 싸움을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것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삶입니다.  
 
죄와 싸우려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각성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흰 도화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으려면 우리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정신이 맑아집니다.
배부를 때는 정신이 혼미합니다.
어떤 것도 그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배고플 때는 정신이 맑습니다.
그러면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된 것입니다.
배고플 때는 밥 생각밖에 안 나기에 정신이 맑은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와서는 죄와 싸웠습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잠을 잘 때도 딱딱한 판자 위에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킹덤’에서도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쉼 없이 자기와의 싸움에 돌입합니다.
다들 헛된 꿈을 꾸며 고생하는 진을 어리석게 봅니다. 
유다인들이 요한의 삶을 보며 어리석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왜 단식하고 금주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하는 고생입니다.
지혜를 지닌 이들은 세례자 요한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킹덤’에서 진도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노비의 신분은 벗을 수 없음을.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줄 당시에 쫓기고 있었던 왕을 만납니다.
그는 그 왕이 왕권을 회복하게 도와줍니다.
결국 신분을 올려줄 대상을 만나야 대장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왕을 위해 싸우고 왕이 왕권을 회복하자 그는 대장군의 지위를 받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꿈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왕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까지 알아야 지혜입니다.
그리고 지혜는 그렇게 죄에서 벗어난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으로 그 옳음이 증명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이겨보려고 스트레스 주는 것은 그저 흰 도화지를 준비하는 것뿐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결국 죄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욕망이 사라져야 죄를 이길 수 있는데 내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으니 그런 욕망이 솟아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즐기게 됩니다.
이것이 지혜가 이뤄놓는 일입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도 만나게 해 주지만 그리스도도 만나게 해 줍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죄를 이기려는 자는 육체를 절제하다가 결국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혜란 바로 죄를 이기기 위해 육체를 절제하려 하게 만드는 믿음입니다.
곧 죄를 이겨야만 행복할 수 있다, 혹은 내가 힘든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이들과 어울리는 이는 지혜로워지고 우둔한 자들과 사귀는 자는 해를 입는다.”(잠언 13,20)
우리는 당연히 죄와 싸워야 함을 알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죄 안 짓고 어떻게 사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자들이 단식하고 절제할 때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고 또 신자들이 먹고 마실 때는
어떻게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흥청대느냐고 말합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이겨야 행복할 수 있다는 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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