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전례의 주기를 화려하게 장식해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오늘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당신 안에 모아 ‘새롭게 하시는’ 분이기에 ‘온 천하의 왕’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시며 결국은 당신의 왕권에 참여하게 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오늘 사무엘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 민족의 임금으로 인정하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는다(2사무 5,1-2). 그러나 다윗 왕권과 그리스도의 왕권은 차원이 서로 다르다. 다윗의 왕권은 구원적 차원에 관여되어있긴 하나, 지상의 왕권이며, 그리스도의 왕권은 신적인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마음에서 죄악을 멀리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복음: 루카 23,35-43: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왕권이며 서로 대립적인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십자가 형장에서 예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과 군인들에게 조롱과 놀림감의 대상이었다.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35.37절). 그들이 예수님을 조롱한 이유는 두 가지 이유이다. 첫째는, 예수가 정말로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왕이라면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렇다 해도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께서 그를 구원해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왕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35절), 즉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죄목으로 달린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38절)이라는 명패도 사형에 처하게 된 이유보다는 예수님을 극단적으로 조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분의 왕권이 드러나고 있다. 즉, 사랑하고, 자신을 무상으로 내어주며, 회개하는 강도에게 은총으로 구원을 베풀고, 사람들 앞에 절대 자유를 누리며, 죽음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왕권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실은 두 강도의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들 중 하나는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하며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한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40-42절).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기도이다. 구약의 많은 기도가 이러한 형태이다(시편 104,8; 120,5 참조). 그러기에 그 강도 편에서 볼 때, 예수께서는 이미 신적인 분이시며, 그분이 맞이하는 죽음은 오직 참되고 유일한 ‘왕국’ 즉 하느님의 ‘통치권’이 절대적으로 행사되는 종말론적 왕국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즉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 구원이 바로 그 순간 보장되었다. 바로 그분의 죽음의 ‘오늘’은 모든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었다. 첫 번째로 회개한 한 살인자가 그곳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하늘나라가 오늘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하느님께 간구하는 바로 그 ‘선물’이다.
콜로새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게”(콜로 1,13-14) 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다. 여기서 ‘아드님의 나라’는 ‘어둠의 권세’(콜로 1,13) 즉 사탄의 나라와 정반대의 나라로 이해되고 있다. ‘아드님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참된 ‘자유’를 얻음을 말하고 있다.
나머지는 그리스도의 찬가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만물이 그분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분이 성부의 완전한 ‘형상’이듯이 세상 만물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분의 ‘형상’이다. 콜로 1,15-17절의 그리스도의 찬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이실 뿐만 아니라, 끝이시기도 하다. 즉 그분은 만물을 존속게 하시며 모든 창조물의 마지막 목적지이신 당신께로 향하게 하신다. 즉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콜로 1, 16)라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와’ 또한 그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피조물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인간에게 맡겨져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분께로 되돌아가야 하는 도정에서 그리스도인이 갖게 되는 역할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절대 통치권’은 모든 만물을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는 것이며 교회라는 공간을 통해 그 통치권을 행사하신다.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은, 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실체를 통해 드러나는 생명력을 뜻한다. 즉 그분의 풍부한 생명력이 교회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절대 통치권이다. ‘머리’는 ‘몸’의 모든 생명의 활동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모두 임금이신 그분의 ‘통치’에 조건 없이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진정 모든 사람뿐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끔 하여야 하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생활로써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온 천하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을 기꺼이 따르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끝없이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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