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희망이 되는 사람인가?
오늘 복음은 자캐오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캐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람을 표현할 때 키가 작고 크고의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키가 작다는 표현은 분명 열등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땅을 정복하며 풀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콤플렉스라고도 합니다.
자캐오는 아마도 돈으로 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마음이 행복이 아니라 고통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빠진 집착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영재 발굴단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강요로 고통받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는 희망을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절망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겐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줄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분명 돈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자캐오는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 여긴 인물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무 위에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집에 들어가 묵으십니다.
자캐오는 예수님 덕분으로 재산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만약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았다면 우리를 찾는 이들은 돈에 대한 욕심, 쾌락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잘 안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돈을 좋아하지 않고 절제를 즐기고 겸손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책으로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찾고 있었습니다.
자캐오가 추구하던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 성물방엔 많은 책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자처럼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속-육신-마귀를 끊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예수님이 보이고 그분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처음엔 하느님을 받아들였다가 차차 하느님을 멀리하게 된 세 명의 왕들이 나옵니다.
사울은 키가 크고 잘 생겼습니다.
하지만 열등감이 있었고 그것이 권력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하여 제사를 지냅니다.
더 인기가 좋은 다윗을 시기합니다.
그러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더 길 수도 있었던 짧은 왕의 생을 마감합니다.
다윗도 하느님을 받아들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색에 빠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까지 죽이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그의 집안엔 풍파가 잔잔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들에게서까지 도망치고 아들에게 아내들까지 욕을 보이는 수치를 당합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웠고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하기까지 했지만,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정략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신까지 섬기게 되어 죄를 짓습니다.
돈은 결국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렇게 나라는 둘로 쪼개지게 됩니다.
이러한 예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며 투덜거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세속-육신-마귀에게서 전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는 것을 질투하는 것입니다.
변할 마음이 전혀 없어서 예수님을 몰아내며 동시에 자신들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세 살 때 최혜연 아이는 어머니가 잠깐 가게 일을 하는 사이 사고를 당해 팔꿈치 아래의 팔을 잃습니다.
부모도 지켜주지 못해 고통스럽고 아이도 자신을 팔을 감추려고만 하였습니다.
열두 살이 된 지금은 다릅니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칩니다.
물론 한쪽 팔은 손가락이 아니라 팔꿈치로 칩니다.
건반을 겹쳐 누르는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쟁이가 되었습니다.
혜연이의 삶을 바꾸어 준 것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바로 손가락, 네 개로 피아노를 치는 이희아 씨의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책입니다. 이희아 씨는 심한 선천성 사지기형 장애인으로 태어나 양손에 손가락 두 개씩뿐이었습니다. 손가락 힘을 키우기 위해 어머니의 추천으로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하는 부단한 노력 끝에 1993년 전국 장애인예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습니다.
2018년 1월 2일에는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된 각계 인사 240명 앞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한 뒤 아파서 참석 못한 가수 강산에를 대신해 ‘넌 할 수 있어’를 불렀습니다.
이희아 씨의 세례명은 히야친타입니다.
필요한 사람이 되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진 것이 없어도 몸이 고통스러워도 자랑할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무 위에 올라와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말하고 배가 고파 힘들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무시해서 짜증 난다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가난하고 절제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합시다.
그리고 행복합시다.
이때 나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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