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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1-02 조회수 : 665

연옥의 존재 이유: 우리 안에 다 자라지 못한 십자가가 있다  
 
 
영화 ‘사일런스’(2017)는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가 일본에 선교하러 갔다가 배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럴 리 없다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도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카오에서 그들을 안내해 줄 기치치로라는 일본인을 만납니다.
그도 천주교 신자였지만, 가족이 다 화형당하는 것을 보고는 배교하고 마카오로 피신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로드리게스 신부 일행을 안내합니다. 
 
그런데 배로 일본에 도착하자 그는 도망쳐버립니다.
다시 자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행히도 로드리게스 신부 일행은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 보호를 받게 되고 그들에게 미사와 고해성사를 해 줍니다.  
 
다른 마을에 갔을 때 기치치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천주교를 믿는 마을에서 종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믿음이 육체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순사들이 와서 로드리게스 신부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기치치로는 순교의 고통을 피하고자 예수님 십자가상에 침을 뱉고 후미에(예수님 모습이 새겨진 동판)를 발로 밟습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피신하다가 산에서 굴러떨어집니다.
이때 기치치로가 그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배교를 한 것에 대해 고해성사를 달라고 합니다. 그의 마음은 진심이 묻어납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사제는 정말 꼴도 보기 싫은 기치치로에게 또 고해성사를 줍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모릅니다. 기치치로가 바로 자기 모습이라는 것을. 다만 자신은 절대 배교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은 가지고 있습니다.  
 
기치치로는 다시 약해집니다.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많은 현상금이 걸렸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는 돈 때문에 마치 유다 이스가리옷처럼 로드리게스 신부를 팔아넘깁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배교를 강요받습니다.
한 사제의 배교가 많은 신자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치치로는 감옥까지 와서 또 고해성사를 달라고 합니다.
만약 믿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꾸준히 고해성사를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는 한데 작은 것입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자신 때문에 무참히 순교의 고통을 겪는 신자들을 더는 지켜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도 결국엔 예수님의 얼굴을 발로 밟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공직자로 선교사 색출을 도와주며 평생을 삽니다.
그가 죽어 화장할 때 그의 손에는 아주 작은 십자가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마치 기치치로처럼. 
 
오늘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의 본격적인 시작인 위령의 날입니다.
오직 가톨릭 교회만 연옥이란 교리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연옥이 있어야만 하고 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며 우리가 기도하면 그 고통이 감해진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해 주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저는 연옥에 가지 않기 위해 비르짓다 성녀를 통해 주시는 기도문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오랜 시간 바쳐오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신앙의 완성은 내 안에 떨어진 믿음의 씨앗을 얼마만큼 키우느냐에 있습니다.
그 믿음의 씨앗은 마치 겨자씨처럼 작은 십자가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나를 완전히 매달아 죽일 정도로 성장합니다.
그렇게 켜졌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 신부나 기치치로처럼 작은 믿음으로 작은 십자가만 지닌 채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손에 들어올 작은 십자가의 크기로는 나를 완전히 십자가에 매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옥에 가야 할까요? 하지만 가리옷 유다처럼 완전히 믿음을 저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십자가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그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작은 십자가만 가지고 있는 신자를 하느님 나라에 들여보내면 어떨까요?
그는 죄를 지을 것이고 다른 이는 피해를 당할 것입니다.
다시 지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에 이런 예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신앙을 가지고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딸 아이를 낳고 큰맘 먹고 아버지를 집에 초대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자신의 딸도 추행했다는 것입니다.  
 
딸의 상처를 아는 아버지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육체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은 아버지가 뉘우친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뉘우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 안에는 자신을 완전히 십자가에 매달 커다란 십자가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작은 믿음만을 지닌 사람을 천국에 보내면 이러한 일이 벌어집니다.
딸은 아버지가 자신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은 모습이 보일 때까지 조금 더 고통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요셉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형들에 의해 팔려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이집트에서 갖은 고생하고 재상이 됩니다.
이제 형들이 요셉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계속 괴롭힙니다.
몇 번이나 그렇게 합니다.
결국 유다가 요셉이 잡아놓겠다던 베냐민을 위해 자신이 대신 갇히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을 용서해 줍니다.
남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용서를 보류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들 안에 자라나는 십자가를 완전하게 성장시킬 시간을 준 것입니다.
이것은 못된 장난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연옥은 이런 자비의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기도하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굳이 그러한 고통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련의 시간을 충실히 받게 됩니다.
연옥이 우리를 더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지옥의 존재는 우리에게 믿음만을 요구하지만, 연옥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그 믿음의 성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이 쳇바퀴 도는 것이 아닌 성장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연옥의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 지상에서의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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