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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0-26 조회수 : 736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미리 선택하신 사람이다 
 
 
아프리카에 가면 결혼을 앞둔 처녀들에게 행하는 한 가지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많은 처녀들이 옥수수 밭에 한 고랑씩 맡아 그 고랑에서 제일 크고 좋은 옥수수 한 개씩을 따는 일인데 제일 크고 좋은 옥수수를 딴 처녀가 그날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한번 지나친 것은 다시 돌아 볼 수도 없고 다시 돌아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앞만 보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옥수수 하나만을 따와야 합니다.  
 
한 번 땄으면 도중에 좋은 것이 있다 해서 그것을 버리고 다시 딸 수도 없습니다.
기이한 일은 제일 좋은 옥수수를 따러 들어간 처녀들은 한결같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못나고 형편없는 옥수수를 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뒤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백화점에서 옷 하나를 고를 때도 백화점 내의 대부분의 옷가게를 한 번은 훑어보고 보아두었던 것을 다시 찾아갑니다.
이런 능력이 있어야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다 훑어보신 다음에 괜찮게 보신 사람들을 뽑으시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주장이 칼뱅의 예정설입니다.
하느님께서 아예 처음부터 천당 갈 사람, 지옥 갈 사람을 뽑아놓고 지옥 갈 사람들은 잘 자라도 죽이고 천당 갈 사람들은 못 자라도 결국엔 살린다는 주장입니다.  
 
하느님께서 과연 앞뒤 안 가리시고 시간 속에 한정되어 미리 인간의 운명을 정하셔야 하는 약한 존재이실까요? 
 
오늘 독서에 예정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예정설은 하느님께서 미리 뽑으신 이들만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그 은총을 내려주셨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미리 뽑으셨다는 말을 ‘칭의’라 하고,
그래서 의롭게 되는 것을 ‘의화’,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영광을 ‘성화’라 말합니다.  
 
이는 가톨릭교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가톨릭교리는 의화가 칭의보다 앞선다는 식으로 가르친다며 위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예정설은 하느님을 정의롭지 못한 분으로 만드는 잘못된 가설입니다.
하느님께서 죄를 짓도록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고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알면서도 유다를 뽑아 지옥에 보내셨으며 어떤 사람은 아무리 악해도 천국으로 보내시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지옥에 가게 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공의와 자비로우심의 본성을 예정설로 꺾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께서 미리 뽑으신 이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주신다는 순서를 합리화할 수 있을까요?  
 
가톨릭교회는 예정설이 아니라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말합니다.
전지전능하심이란 하느님께서 시간과 상관없이 한 번 훑어볼 능력이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세상 시작 전부터 아셨습니다.
미리 아시기 때문에 구원될 이들에게 더 큰 은총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사제로 살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도움을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도록 미리 결정하시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것을 아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을 구원을 위해 미리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미리 뽑힌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의 어떤 면을 보고 미리 뽑으시고 은총으로 의롭게 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오늘 복음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은 자기의 본성을 거스르는 삶을 말합니다.
좁은 문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인 이웃사랑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입니다.  
 
돈에 대한 욕구, 성욕이나 식욕에 대한 욕구,
높아짐이나 명예에 대한 욕구를 거스르는 삶이 좁은 문으로 향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배처럼 그 물살을 거스르지 않으면 저절로 흘러서 지옥의 폭포로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기 자신을 거스를 줄 아는 사람을 미리 보시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노를 선물하시는 것이 미리 뽑으신 이들을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미리 결정하셔서 노를 선물하시는 것이 아니라 노를 젓고 싶어 하는 사람을 미리 아셔서 노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의지가 먼저냐, 인간의 의지가 먼저냐의 문제입니다.
예정설은 하느님의 의지대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주장이고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시고 주님께서 결정해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말은 그런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뽑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뽑히지 않아서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 뽑히지 않은 것입니다. 
 
내 자신을 거스르려는 의지, 그 의지로 하루하루 자신의 욕망과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이 미리 뽑힌 사람이 됩니다.
반면 자아와 타협하라든지, 자아를 찾고 실현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미리 뽑힌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도 미리 뽑힌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내 자와의 욕구에 거슬러 좁은 문인 십자가의 영광으로 향할 때 주님께서 미리 뽑으신 이들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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