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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10-17 조회수 : 613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 
 
 
지나치게 기도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시던 도중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려버리신 다음 그것에 대해 신기하게 여기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에 희망을 겁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이미 받은 줄로 믿고 청하면 ‘무엇이든’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무엇이든 청하는 것을 다 받았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합당해야만 본인이 믿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책상 위에 연필을 놓고 마음속으로 ‘움직여라, 나는 믿는다, 연필아 움직여라.’ 라고 열심히 해 보았습니다.
또는 촛불을 보며, ‘나는 믿는다.
촛불아 꺼져라. 촛불아 꺼져라. ...’라고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연필은 손으로 움직여야 움직였고, 촛불은 입으로 불어야 꺼졌습니다. 
 
저는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도가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고 믿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도가 하느님 뜻에 맞는지 살펴야 합니다.
요한은 자신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요한 5,14) 
 
요한은 무엇이든지 ‘그분에 뜻에 따라’ 청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양심은 우리가 무엇을 청할 때 그것이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분별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손으로 움직일 수도 있는데 저절로 움직이는 기적을 바란다던지, 입으로 불어서 끄면 되는 것을 굳이 기적적으로 꺼지기를 원한다면 자신 안의 양심이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게 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 청한 것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는 자신의 형이 부모의 유산을 혼자 다 챙겼기 때문에 자신에게 나누어 달라고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보통 사람의 입장이라면 말 한마디 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동생의 청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생에게 탐욕을 경계하라시며
욕심 많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돈은 유해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청하는 것은 들어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 복음으로 왜 우리 기도가 어떤 것들은 들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2살 먹은 어린 아이가 요리를 해보겠다고 칼을 달라고 한다면 칼을 쥐어줄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유익하지 못하거나 해로운 것을 청한다면 예수님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 청은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우리나라 돈으로 3억 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의 가족이 벌이던 자축 파티가 살인극으로 돌변하여 일가족이 패가망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93년 9월 25일 스페인에서 있었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경찰은 이날 현지의 한 청년이 복권이 당첨돼 4천 9백만 페세타(약 3억 원)를 타게 되자 지난 23일 기족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즐기던 중 가족에게 나눠 줄 액수를 놓고 17세의 여동생과 심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그만 칼로 찔러서 죽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될 것이 뻔한 데도 복권을 당첨시켜 주시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어 그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자신들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를 실망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이 헤아릴 길 없습니다. 
 
어느 마을에 냉담자와 신부님이 살았습니다.
이 둘은 모두 나병이 걸리게 되었고 다 같이 나병이 낫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날마다 기도로 생활하는 사제가 먼저 나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냉담자의 기도를 듣고는 하루 만에 바로 낫게 해 주셨습니다.
사제는 결국 나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냉담자는 병이 나았는데 신부님은 왜 낫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냉담자는 이 병 때문에 다시 기도하게 되었는데 낫지 않게 해 주면 아주 토라져서 돌아오지 않게 될까봐 하느님이 바로 낫게 해 주셨지.
나야 나병으로 죽어도 믿음을 버리지 않을 테니까 하느님이 내 희생이 필요하신 모양이야...” 
 
바오로도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씩이나 청하였지만 하느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꾸준히 청할 줄은 알아야 하되,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것이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우리는 청할 권리가 있지만, 무엇을 들어줄 지는 하느님에게 해당하는 권리입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그것이 더 유익하니 주시지 않는다고 믿으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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