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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9-19 조회수 : 613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가진 자의 여유 
 
 
정신분석학 이무석 교수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교수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때 철학, 논리학, 수학의 대가이며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란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오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 뺨을 돌려대라고 했다. 
이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자학적인 요구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요구를 하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 
 
러셀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던 차에 이무석 교수의 은사인 김성희 교수를 만나게 된 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김성희 교수는 한국 최초의 정신분석학자였고 전남의대에 정신과를 창설한 분이랍니다. 
 
군복무 휴가 때 김성희 교수를 찾아간 이무석씨는 김 교수의 집 마루 밑 햇볕이 드는 곳에 있는 개를 가리키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디선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큰 개를 귀찮게 했지.
강아지는 ‘캉캉’거리면서 큰 개의 오른쪽 뺨을 물었어. 큰 개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버렸지. 
 
강아지는 왼쪽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쪽 뺨도 물었어. ‘컹!’하고 겁을 줄만도 한데, 큰 개는
상대하지 않고 부스스 일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떠 버렸어.” 
 
사람은 대부분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으면 대번 맞받아칩니다.
이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모함했다면 내 명예가 회손 되기 때문에 크게 화를 내거나 소송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쪽 뺨도 그냥 내어 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자신 안에 더 중요한 것을 지니고 있기에 그 정도 잃어도 티도 안 나기 때문입니다.
오른 뺨을 맞았을 때 왼 뺨을 돌려 댈 수 없는 이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 자존심마저 무너지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성희 교수는 또 평양대학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공산당원 한 명이 병원에서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있었어.
그는 막 크리스천 간호사들을 끌어다 총살하고 돌아온 길이었어.
증오하던 크리스천들을 죽여 버렸으니 시원할 법도 한데,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지. 
 
얘기인즉 이랬어. 총살 장소로 실려 가는 트럭에서 간호사들이 기도를 하더라는 거야.
그 기도의 내용을 들어 보니 자신들을 총살하려는 공산당원인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어.
크리스천 간호사들이 살려 달라 애원하며 그의 발목을 붙들고 매달렸으면 강자로서의 쾌감이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오히려 그녀들은 죽음 앞에서도 태연했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던 거야.
마치 그녀들이 강자이고 그가 철없는 짓을 하는 약자처럼 느껴졌던 거지.
그래서 공산당원은 간호사들을 총살시키고도 패배감을 느꼈던 거야.” 
 
오늘 예수님은 가진 자들은 더 가지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그 가졌다고 믿는 것조차 빼앗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 감추어진 것은 드러날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큰 개는 작은 개에게 모욕을 당하고 얼굴을 물려도 크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낼 만큼 잃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무언가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간호사들을 총살시킨 사람은 자신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를 위해 기도 해 주는 간호원들이 자신보다 무언가 더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빼앗을 수 없는 무엇을 지니고 있기에 목숨을 잃어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들을 총살시킨 그 사람은 아주 작은 죽음의 위협에도 벌벌 떨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목숨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지만, 간호원들은 목숨을 잃어도
크게 잃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하느님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세상 것들을 다 잃어도 여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재물이나 명예, 생명 등을 잃지 않으려고 크게 저항한다면 이는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누가 남을 모욕하거나 때리거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해도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사례 참조: 이무석, 30년만의 휴식, 215-218]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이 간수들의 신임을 얻어 간수들 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어 모든 죄수들에게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결국 매를 맞고 독방에 갇힐 것을 알았지만
그는 여유로웠습니다. 
왜냐하면 독방에서 나오면 이제 자신이 파놓은 땅굴로 탈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느님을 가집시다. 
먼저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가집시다.
탈출구가 있다면 감옥에 있어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가져야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평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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