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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9-10 조회수 : 616

나눔으로 관계의 빈곤을 넘어라  
 
 
얼마 전에 교구청에 장례미사가 있어 갔다가 오산성당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서울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았습니다. 
어떤 보험회사의 어여쁜 아가씨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보험은 관심 없다고 말하고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5천 원짜리 상품권이 당첨되었으니 꼭 이메일을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보험 상품 한 가지만 설명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들어보시고 결정하시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미 많은 보험을 들어놓아 더 이상 보험이 필요 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에 3만 5천원을 내면 다른 보험이 들어있어도 상관없이 모든 질병의 모든 병원비가 지원되고 나중에 원금도 되돌려주고 사망하게 되면 2억 5천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20년만 부으면 평생 혜택을 볼 수 있고, 특별히 이미 보험을 가입한 사람들도 다른 보험 가입 여부에 상관없이 돈이 지급되기 때문에 보험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드는 아주 좋은 상품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워낙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어서 제가 사제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 보험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의료비가 제가 속해 있는 곳에서 다 나온다고 설명을 해 주고 좋은 보험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들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기에, 그냥 “저는 보험을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험을 하나도 안 들고 사시는 분이 있느냐고
매우 신기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제가 천주교 신부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분도 매우 끈질기게 개신교 전도사님들도 그 보험에 많이 가입했다고 하면서 성직자들도 미래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분들은 가족들이 있으니 보험이 필요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은 혼자 살기에 보험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쓸 데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부모님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제가 죽으면 2억 5천이 부모님께 가게 되는데도 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부모님까지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맡기고 살기 때문에 부모님도 주님께서 잘 보살펴 주실 것이고,
그런 돈이 없어도 저희 부모님은 부족함 없이 잘 사시고 계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이런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 자매와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가위 미사 때마다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보게 됩니다.
부자는 소출을 많이 거두어서 더 큰 장고에다 곡식과 재물을 모아놓으려고 하지만 사실 오늘이 그 부자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부자는 이미 남들보다 재물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재물을 모아두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불명확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에 참으로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것입니다.
재벌 가에서 재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들도 가난해보입니다.
아직도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우리 책상 서랍을 열어봅시다. 혹은 책장이나 옷장을 열어봅시다.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봅시다. 
 
아마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미래에도 사용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만약 그것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그 사람들이 매우 감사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혹시’라는 생각 하나 때문에 나도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들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다가 자신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들을 위해 좋은 일도 한 번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미래에 대해 그렇게 불안해하고 자꾸 더 가지려고만 하는 것일까요?
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사람도 나의 미래를 완전히 책임져줄 수 없음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빈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물질적인 빈곤감의 근본적 원인은 관계의 빈곤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에서 오히려 재물을 사용하여 관계의 빈곤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관계의 빈곤은 상대를 위해 나의 소유를 나누어가질 때 해결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와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합니다.
모든 관계는 자신의 것을 나눌 때 이루어집니다. 
 
저는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바칠 수 있어야 더 가까운 관계인 것을 알았으면서도, 요즘 하느님께 저의 시간 중 졸린 시간만을 바쳐서 성체조배 하면서도 자주 졸았던 것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마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미래에도 사용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만약 그것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그 사람들이 매우 감사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혹시’라는 생각 하나 때문에 나도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들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리석은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다가 자신도 사용하지 못하고 남들을 위해 좋은 일도 한 번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미래에 대해 그렇게 불안해하고 자꾸 더 가지려고만 하는 것일까요?
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사람도 나의 미래를 완전히 책임져줄 수 없음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빈곤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물질적인 빈곤감의 근본적 원인은 관계의 빈곤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에서 오히려 재물을 사용하여 관계의 빈곤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관계의 빈곤은 상대를 위해 나의 소유를 나누어가질 때 해결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와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합니다.
모든 관계는 자신의 것을 나눌 때 이루어집니다. 
 
저는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바칠 수 있어야 더 가까운 관계인 것을 알았으면서도, 요즘 하느님께 저의 시간 중 졸린 시간만을 바쳐서 성체조배 하면서도 자주 졸았던 것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같은 명절 때 자녀들이 부모에게 오면서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관계는 주는 것이 없이는 형성되지 않습니다. 일해서 번 돈을 하나도 가져다주지 않는 남편이 아내와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나눔으로써
관계의 빈곤을 극복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밑천인 것입니다. 
 
오늘같이 풍요로운 한가위 날 감사할 줄 압시다.
감사해서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과 나눌 줄 압시다.
물질로 관계의 풍요로움을 창출합시다. 
 
물질을 위해 관계의 빈곤을 초래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악은 관계의 빈곤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한가위의 의미는 풍요한 재물을 이용해 관계의 풍요로움을 창조하는 때여야 하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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