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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9-05 조회수 : 774

죽이는 시선, 살리는 시선  
 
 
김학배 안젤로 신부님은 평화방송 강의에서 한 장애인 변호사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장애인이시지만 그 장애를 딛고 당당한 법조인이 되어 살아가고 계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그 분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하느님은 믿으시지만 성당은 나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사법고시를 준비 중일 때 명동성당을 힘겹게 오르락내리락 하며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성당으로 올라가면서 쩔뚝거리며 힘겹게 오르는 자신을 보고는 함께 오르고 있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된 거야?”
어머니는 그 사람이 듣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도 엄마 말 안 듣고, 하느님 안 믿으면 저렇게 돼!” 
 
이 말을 듣고는 그분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런 사람들이 다니는 성당 미사에 나갈 자신감이 없어진 것입니다. 
 
옛날 제나라 때의 일입니다. 
백주대낮에 어떤 사람이 금은방에 들어와서 금을 훔쳐 달아나다가 즉각 포졸에게 붙잡혔습니다. 
포졸은 그를 끌고 가며 말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보고 있는데 금을 훔치다니 네가 제정신이냐?” 그는 대답했습니다. 
 
“取金之時, 不見人, 徒見金”, 즉
“금을 잡을 때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금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무엇에 눈이 멀면 그것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않는다.” 
 
인간의 눈은 이렇게 마음이 원하는 것만을 집중해서 보게 되고 그래서 전체적인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시선이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가리켜 무엇에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백주대낮에 금을 훔치는 일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께 해를 끼칠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라는 질문을 하지만 그들은 그 질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든 중요하지 않고, 무조건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서 안식을 법을 어기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금도 아니고, 사슴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나자렛 예수의 죽음이었습니다. 
일단 그런 마음을 품으면 그 목적이 달성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장님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마음까지 오그라들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 따듯한 시선으로 당당히 사람들 가운데 나설 수 있게 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느냐며 “괜찮다, 괜찮아!”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눈빛이 바로 예수님의 눈빛이었습니다. 
움츠린 사람을 당당하게 세상 가운데 서게 하는 그 눈빛, 우리에겐 그런 눈빛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교생 실습을 나온 여자 선생님이 예뻐서 다들 난리였습니다.
지나가면 서로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대화를 나누어보려고 경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도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굳이 물어볼 것이 없었습니다. 
제 옆을 지나갈 때 질문이 있다고 불러 세웠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삼형제 중 막내라 여자와 이야기 한 적도 없고 쑥스러워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을 못 걸어요.”
그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학생이 우리나라 어떤 여자를 꼬셔도 넘어올 거예요. 내 말을 믿어요.” 
 
저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그 때 들었던 그 말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부터 여자 앞에서 주눅 들어 말을 못 하던 것들이 조금씩 풀려나갔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겐 두 가지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이는 시선과 살리는 시선,  오그라들게 하는 시선과 펴게 하는 시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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