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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26 조회수 : 929


3개월 시한부 선고받고 바뀐 인생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티는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안효정 간호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러 경우를 보았다고 합니다. 

한 어르신은 폐렴으로 오랜 병상 생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분에게 다녀가시는 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젊으셨을 때 가족에게 그렇게 못되게 해서입니다. 상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는데 버티고 계시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안 간호사는 청력은 살아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귀에 대고 크게 “할아버지, 부인이 보고 싶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눈을 뜨시더니 두 번 깜빡이더라는 것입니다. 

 

안 간호사는 수소문하여 부인과 자녀들을 찾아 다녀가게 하였습니다.

부인이 그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가 다 용서할 테니 편안히 가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고는 바로 임종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분은 90세가 넘은 할아버지셨습니다. 가끔 친지들과 지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거의 산 송장처럼 30년을 병원에서 지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은 자녀들이 안 다녀간 것을 알고는 연락이 끊긴 미국에 사는 아들이 다녀가게 하였습니다.

2주 만에 아들이 다녀갔고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죽음 직전에야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리 준비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끝까지 그런 준비가 필요 없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이지은 씨는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보살피며 병원에서 함께 입원하였던 다른 암환자들의 임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목격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남편과 함께 입원하고 있던 그 환자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의 이름은 정자였다고 합니다. 

그분은 눈의 실핏줄이 더 터져서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고 있었고 몸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있어서 천만 하나 덮어놓은 상태였으며 온몸의 땀구멍에서 소변이 빠져나와 주위에서 소변 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분의 아내와 밖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도 못 하던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불렀다는 것입니다. 

“정자야, 정자야! 무서워, 정자야!”

그리고 그 아내의 목을 팔로 두르더니 “나 무서워서 혼자 못 가, 함께 가자!”라고 하며 놓아주지 않더랍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이지은 씨는 갖은 방법을 써서 아내를 그 남편으로부터 떼어놓았습니다.

계속 그런 두려움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자기 남편의 귀를 막아주어야 했습니다.

보통 심박이 30이하로 떨어지면 사망하는데 그분은 억지로 숨을 몰아쉬며 사흘이나 버텼다고 합니다.  

 

이것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이지은 씨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사람처럼만 죽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남편은 도박과 외도 등으로 빚을 잔뜩 지고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환자처럼 남편도 아내를 발로 차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위에 무서운 사람들이 둘러섰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남편의 눈은 처음 보는 공포에 질린 눈이었습니다.

이지은 씨는 불교 신자였음에도 ‘이 사람 지옥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병원이기에 무조건 사람들을 불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언니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가시기 2주 전에

그분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반을 굶어 뼈만 남았고 온몸이 돌처럼 굳어있었는데도 맥박 30이 되었을 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셨습니다. 

[출처: ‘말기암 임종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겪은 충격적인 사실’, 유튜브 채널, ‘아빠품안에’] 

 

오늘 복음에는 현명한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이 나옵니다.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무언가를 준비했다면 현명한 처녀들이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누구에게나 오는 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죽음 앞에 가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저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묵상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장례미사 중 가장 많은 신자가 참석한 미사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유학하며 한 동네에서 행해진 장례식입니다.

마체라타라는 곳의 500년 된 커다란 성당에서 행해진 장례미사였습니다.

보통 주일 교중미사보다 그 장례미사에 다섯 배 정도의 하객이 들어찼습니다.

당시 한여름이었고 기온이 40도 정도였습니다. 성당에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시장님부터 시작하여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이 미사에 참례한 느낌이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성당에 빼곡히 사람들이 서 있었고 문을 열어 밖의 뙤약볕 아래도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동묘지까지 행렬을 하는데 그 더운 날씨에도 아무도 떠나지 않고 마을을 가로질러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그날 장례를 치르는 분은 성직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여자 신자였습니다.

3년 전에 암으로 시한부 3개월을 선고받은 자매였습니다. 그 자매도 평소에 하.사.시.를 읽었다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받고는 자신의 집에 신자들을 초대하여 성경을 읽고 생활 나누기하였고

늘 하던 대로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자매는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면 언제나 먼저 달려와 인사하였고 신앙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그분은 저를 알아보고 찾아와주어서 고맙다며 천사의 미소를 보내셨습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아내가 돌아가시기 2~3일을 제외하곤 3년 동안 기적적으로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렇게 3년 동안 가진 것을 다 주며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은인이 되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다 그 장례미사에 참례하여 그분이 가는 길에 함께 한 것입니다.  

 

그 자매가 특별한 삶을 산 것도 아닌데 시한부 선고받고는 더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 안에서 탐욕과 무절제와 같은 안 좋은 욕망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며 방탕한 삶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 앞에 나아가는 데 기름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는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일 수 있고 죽고 나면 그리스도를 심판관으로 만나야 함을 되새긴다면

내 마음 안의 기름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죽어도 아쉬움 없이 행복하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습니까?

미소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기름이 가득 찬 등잔을 들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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