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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10 조회수 : 1101

살려고 하다 죽었던 기억은 가끔 되새겨도 좋을 듯…. 
 
 
우영우 5화에서 권모술수 권민우와 우당탕탕 우영우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권민우는 노력해서 이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왔고 아무래도 우영우는 인맥이 있었습니다.
피해의식을 느낀 권민우는 우영우와 같이 사건을 맡았지만 우영우에게 협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맡은 재판은 현금 인출기에 들어가는 현금 넣는 카세트의 특허권에 관한 것입니다.
이화 ATM은 자신의 경쟁업체인 금강 ATM이 자신들의 기술을 모방했다며 카세트 판매 가처분 신청합니다.
여기에서 권민우는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지만 승리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씁니다.  
 
뒤처지고 있다고 느낀 우영우도 어쩔 수 없이 거의 위증에 가까운 증언을 하도록 조언을 줍니다.
그 덕분으로 금강은 카세트를 더는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리더스라고 하는 회사에서 똑같은 것을 이전에 만든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화 ATM은 권민우와 우영우에게 돈이 잘 벌린다는 해바라기꽃 그림을 선물합니다.
그들 사무실에 변호사 윤리강령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돈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놓고 갑니다.
하지만 우영우는 마음이 찜찜합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성공에 눈이 멀었던 자신을 부끄러워합니다.  
 
물론 리더스가 전에 만들었던 카세트를 고물상에서 간신히 찾아서 다시 판매하게는 되었지만 이미 이화가 대부분의 은행과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영우는 부끄러운 마음에 해바라기를 다시 떼어내고 그 자리에 왜 진실을 외면하느냐는
금강 사장이 보내온 편지를 부쳐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돈과 성공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은 행복을 사랑받는 것으로 여깁니다.
돈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합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미워한다는 말은 흘려버린다는 뜻입니다.
똥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흘려보냅니다. 그래야 삽니다.
모든 법칙이 그렇습니다.
내어 보내야 또 들어옵니다.
나무가 살려면 물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흘려보내기도 해야 합니다.
왜 가뭄에도 산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내릴까요?
아무가 저장하던 물을 흘려보내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나무를 계속 두어야 할 이유가 줄어들 것입니다.
수많은 나무가 잘려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물을 흘려주는 바람에 인간은 나무를 보존하고 더 심습니다.
흘려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40일 굶어도 살지만 4일 사랑받지 못하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현재 코로나로 돌아가시는 분들보다 자살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외적으로 보이는 바이러스에만 신경 쓰고 정작 우리 마음이 우울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이 훨씬 더 치명률이 높은 바이러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죽고 싶어집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죽고 싶은 아이가 친구와 말하는 내용은 이랬습니다.
위험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친구는 “내가 죽으면 아파할 사람이 많아서 난 그런 생각을 못 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죽고 싶은 친구는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꺼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 생명력이 향상됩니다.
그러려면 생명을 흘려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중고등부 여름 신앙학교 때 살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건장한 남자아이들이 저를 들고 물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고이 빠져주면 되는 것을 저는 괜히 힘자랑하고 싶어서 그들을 빠뜨렸습니다.
그중에 덩치 큰 학생 하나가 기분이 나빴는지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때 왜 그냥 빠져주지 못했는지 항상 후회스럽습니다.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바로 죽음의 전조입니다.  
 
이런 예는 아주 많습니다.
축구를 하다가 잘 보이려다 보니 나 때문에 넘어진 사람을 바라만 보고 일으켜주지 않았던 적이 있고, 주임 신부님에게 불순종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내가 살려다 결국엔 찜찜한 후회로 오랜 시간 고생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겐 분명 이런 기억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한두 개는 우영우가 자신이 외면한
진실이 담긴 편지를 자기 사무실에 붙여놓듯 우리 마음 안에 붙여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살려고 하면 기분이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 자신과 자녀들에게 절대 경쟁해서 다른 이의 피를 흘리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피를 흘려 이웃을 살릴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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