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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8-03 조회수 : 1268

가나안 여인에게 자존심과 욕심이 없는 이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4화’에서는 세 형제가 재산 상속 때문에 재판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영우 변호사의 절친인 동그라미의 아버지가 형들에게 속아서 100억 상속 중 20%만 받기로 했는데 상속세까지 내게 되어서 오히려 2억 정도를 더 세금으로 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영우는 동그라미 아버지가 도장을 찍었다던 각서를 보고 기망행위로 계약이 취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줍니다.
그런 법은 이미 사라졌는데, 속여서 도장을 찍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동삼의 큰형이 상속법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며 동동삼이 평소 형들을 어려워했다는 점을 가지고 사기 및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였음을 주장하려 하나 증거가 없었고 형제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유일한 증인인 이장은 동동삼의 형들에게 매수되어 법정에서 거짓 진술합니다.  
 
피고의 기망행위를 입증할 수 없어 난항을 겪던 중 동그라미의 “그놈의 증거, 내가 만들 수도 없고!”라는 말에 힌트를 얻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떠올립니다.
민법 제556조, 증여 계약 기간 중에 증여자에게 범죄행위가 일어났을 때는 증여 계약이 해제될 수 있다는 법조를 따라 동그라미와 동동삼이 형제의 자택에 가서 어그로를 끌어 폭행을 유도함으로써, 폭행 관련 진단서나 자료를 제출해 사건을 해결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피고 측 변호사가 “아, 잠깐만요! 혹시, 증여 해지를 노리고 폭행을 유도한 것은 아닙니까?”라고 말하지만, 우영우는 “그렇다는 증거 있습니까?”라고 일격을 날리며 사건을 해결합니다. 
 
동동삼은 왜 형들의 강압에 못 이겨 도장을 찍어주었을까요? 동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형들은 왜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 했을까요? 부모의 자녀로 인정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돈이 좋아서 더 가지려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살기 힘든 사람들이 더 돈에 대해 욕심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상속 재산이 많아질수록 형제간의 싸움이 더 커집니다.
변호사들이 말하길 유산 30억이 넘으면 자녀는 반드시 싸운다고 합니다.
이건 그럴 재산이 없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믿음이 있다면 어떨까요?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아니면 욕심 때문일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 욕심내지 않습니다.  
 
욕심은 그럴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이미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받으면 그럴 자격이 있기에 받는다고 생각하고 못 받으면 자신은 그럴 자격이라고 믿습니다.  
 
욕심은 왜 생기는가? 돈 때문에? 천만에. 재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유산이 많을 경우.
특별히 30억이 넘으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결국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가 주는 재산에는 부모의 인정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재산을 통해 자녀가 될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한 가지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자존심도 욕심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께 인정받지 못했다고 믿게 합니다.
그래서 선악과에 욕심을 냄으로써, 또 상대를 심판함으로써 자신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우려 합니다.
반면 믿음이 있었다면 자존심을 세우거나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녀 취급하시며 그녀를 개 취급하여도 그녀는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자녀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 찌꺼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다만 딸을 악령에서만 구해달라고 합니다. 욕심도 없고 자존심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미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정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자존심을 세울 일도 욕심을 낼 일도 없게 합니다.  
 
일본 강점기에 평안도 신천에 유명한 깡패가 있었습니다. 김익두입니다.
사람들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지역 주민들에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매일 동네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합니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아, 저 사람은 얼마 전에 깡패였는데.” 그러면,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하고 다녔습니다. 
 
한 번은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아주머니가 김익두 목사를 시험합니다.
문 앞에 와서 “예수 믿으세요” 할 때, 설거지물을 얼굴에 확 뿌려버렸습니다. 
“죽었나 살았나 보자.” 
김익두 목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죽었으니 당신이 살았지, 내가 만일 살았으면 당신은 벌써 죽었을 것이오.” 
 
믿음은 우리 자신을 죽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자존심도 살고 욕심도 생기는 것입니다.
김익두는 돈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폭력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생기고 나서 길에서 저러한 모욕당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같습니다.  
 
가나안 개라는 말을 듣고도 감정이 상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아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나안 여인이 발끈하여,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창조하신 백성을 ‘개’로 비유하시는 것은 좀 아니죠?” 라고 말했다면 그 여인의 믿음은 거기까지였을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믿었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이해되지 못 하는 행동과 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해 생기는 자존심과 욕심은 하느님께 인정받아야만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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