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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29 조회수 : 1403

저는 누군가의 신앙을 평가해야 할 때 이것만 봅니다 
 
 
존 록펠러는 23세에 이미 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43세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독점기업인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를 세웠습니다.
그의 재산은 현 시가로 따지면 500조가 넘습니다. 하지만 53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내는 것은 물론이요, 주일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늘 긴장하며 걱정으로 가득 찬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건강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록펠러의 전기를 썼던 존 윙클러에 따르면 53세의 그는 “미라처럼 보였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때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희소 질환으로 1년 시한부 인생을 통고받았습니다.
윙클러에 따르면,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한때는 모유만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본래 록펠러는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농장에서 자랐기에 강인한 어깨, 꼿꼿한 자세, 힘차고 활달한 걸음걸이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일, 끝없는 걱정, 끊이지 않는 비난, 불면의 밤들, 운동과 휴식 부족”이 커다란 타격을 입혀서 결국 그를 주저앉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일주일에 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식비는 2달러도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비록 십일조를 하고 기도하고 교리 교사 봉사하더라도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익이 생겼을 때는 모자를 바닥에 던지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만, 손해를 보면 곧바로 병이 났습니다. 돈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오대호를 거쳐 4만 달러어치의 곡물을 실어 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곡물에 보험을 들지 않았습니다.
150달러 정도의 비용이 추가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이리호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파트너였던 조지 가드너가 아침에 사무실로 가보니 록펠러는 화물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가 가드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무 늦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보험을 들 수 있나 알아보게. 어서 빨리!”
가드너는 서둘러 도시 외곽까지 달려가 보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록펠러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그사이 화물이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전보가 온 것입니다.
록펠러는 150달러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결국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한 해에 5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던 그가 자기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데 쓰이는 150달러를 아까워했다는 말은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즐거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근심과 걱정, 두려움 속에서 돈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죽는 게 두려웠는지 신앙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그 신앙이 그의 감정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감정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나중에 한 아이에게 수술비를 지원해 주며 이후 40년을 더 살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의 신앙이 그의 감정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오늘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축일입니다.
셋은 자매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으로 마르타는 예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에도 자신만 일하며 동생은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마르타의 근심을 덜어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이 믿음이 마르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오빠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당연히 우리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걱정, 근심, 두려움, 불안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닙니다.
성당에서 나갈 때 우리 감정을 살펴봅시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미사를 의미 없게 한 것입니다.  
 
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시덤불을 제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던 나비를 구해주었습니다.
나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때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를 소곤거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해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러러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쁜 소녀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代價)로 천사는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구해주어서 고마워요.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하게 될 거예요.’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더니 정말 평생 행복했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을 만났습니다.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상처를 지니고 계셨지만 분명 살아계셨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난 이의 모습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열정이 넘쳤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을 바꿔놓지 않는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이 우리 감정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도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다면 기도는 헛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성체를 영하는 순간 기쁘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아직은 부활이요 생명으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기분을 바꿔주지 못하는 건 신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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