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
저의 첫 기억이 조부모님의 돌아가심이었고 그 덕에 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5세까지는 결혼해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후에는 사제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쨌든 행복이란 모토 덕에 사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원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다고 확신을 합니다.
전에 김완식 요셉 형제님이 전신자 대상 사순피정 강의를 해 주셨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무당이셨다가 나중엔 대순진리회의 선사까지 하시고 지금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무당이셨을 때 한 천주교 집안에 굿을 해 주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 아이가 천재여서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고 대기업에서 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니던 중 정신이상이 되어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는 아이를 사제로 봉헌하기로 했었지만 아이가 천재였고
그 덕택으로 집이 부유해지다보니 부모님은 옛 약속을 잊고 냉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 명의 대무당이 모여 먼저 자신의 집에서 준비 굿을 하였는데 이상하게 그 집으로 보내는 신마다 돌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셋은 그 집에 가서 각자 7일씩 굿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김완식 보살이 7일 동안 굿을 하였지만 어떠한 신도 내리지 않아 코피만 쏟으며 쓰러졌고 나머지 두 무당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대나무를 잡고 굿을 하는데 그 나무가 흔들거리고 방울이 울리더니 이상한 영의 기운이 자신을 스쳐지나갔고 김 보살은 몸을 비틀고 비명을 지르며 완전히 혼절하여 버렸습니다.
그 집은 성소자가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 집을 성령님이 보호하고 계셨고 그래서 어떤 악령도 얼씬거리지 못했고 무당까지도 그렇게 쓰러뜨리셨던 것입니다.
한 번 성령의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니 몇 달 동안은 신들이 자신 안에도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집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고 합니다.
몇 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김 보살이 요셉으로 세례를 받고 남양성모성지에서 복사를 서고 있는데 미사 후에 한 예수회 신부가 자신을 부르더니
“혹시 김 보살 아니세요?” 하더랍니다.
그 분이 바로 자신이 굿을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성당에 다니신 부모님 덕택에 병이 낫게 되었고 나중에 예수회에 들어가 그 좋은 머리로 8개 국어를 하며 성경을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성소는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람이 받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의 오른 편과 왼 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정하시는 것이라 하십니다.
실제로 아버지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수장으로 정하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뜻에 따라 그에게 하늘나라 열쇠를 맡기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성소를 받고 뽑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그분이 마신 잔을 마시려는 노력입니다.
어느 날 두 수탉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수백 마리의 암탉에게 한두 마리의 수탉만 있으면 수정이 가능합니다.
흰 닭과 검은 닭이 싸우고 있었는데 검은 닭이 자신이 흰 닭보다 더 강한 것을 알고 흰 닭에게 싸움을 건 것입니다.
역시 예상대로 흰 닭은 피를 철철 흘리며 툇마루 밑으로 숨었습니다.
검은 닭은 울타리 위로 뛰어올라 “이제 암탉은 모두 내 거다. 너도 그 밑에서 나오면 죽는다.”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 때 매 한 마리가 마침 닭 우리를 지나다가 울타리 높이 올라 앉아있는 닭을 낚아챘습니다.
높이 올라와 있을수록 낚아채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멀리 사라져갔습니다.
결국 암탉들은 흰 닭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수탉으로 태어나는 것도 하나의 성소입니다.
그러나 높아지려고 하다가보면 위의 예처럼 그 귀한 성소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리옷 유다도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셔서 뽑으신 한 명의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그 분의 잔을 함께 마시기를 원하기는커녕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하십니다.
사도로 뽑혔다면 우선 그 분이 마신 잔, 즉 십자가 길을 걸을 결심이 있어야합니다.
그 다음은 높아지려하지 않고 남을 섬기는 겸손한 사람이 되는데 온 힘을 써야합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것이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그 자신이어야 하기에 그만큼 쉽지 않은 길입니다.
어제도 형과 통화하는 중에 형이 저에게 겸손한 사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형이 다니는 성당에 계신 사제 모습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태어나실 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지르인이라고도 하고 나자렛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싸워 이겨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고통을 잔을 마신 모습이 바로 우리들이 우리들을 뽑아주신 분을 위해 합당히 드려야 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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