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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18 조회수 : 1568

여러분 삶의 의욕의 정도를 측정해 드립니다 
 
 
무엇을 잃으면 삶의 의욕을 잃을까요? 무엇을 찾으면 삶의 의욕을 찾을까요?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에 사는 지니는 요술램프를 소유한 주인에게 모든 소원을 들어줍니다. 
 
“지니가 당신에게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면 무엇을 청하겠습니까?”
제가 왜 이 질문으로 시작하느냐면 이 대답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가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계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에게 같은 질문했을 때 그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이 묵상글의 끝에 그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유튜브에 매일 복음 묵상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 교리서 해설, 영성 서적 해설, 성서 해설까지 올리니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많이 알아야 하는 건가요? 시골 할머니의 단순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많이 알아도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요?” 
 
저는 당황하여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가르치셨다면 배우는 게 좋아서 그러셨겠죠.”
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공부해도 잘 못 하는 이유는 같은 이슬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허술한 대답에 답이 다 있습니다.
삶의 이유는 더 배워서 뱀에서 소로, 모기에서 예수로 본성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배움 없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배움과 삶의 의욕은 결국 비례합니다. 
 
아기가 진정한 성장을 시작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부모에게 이것저것 귀찮게 물으며 배움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성장을 멈추는 때는 언제일까요?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 배움을 멈추는 때입니다.  
 
부모의 이름을 알았으니 더는 부모에게 배우지 않겠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고 심지어 표정도 제대로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기는 부모에게서 배운 것을 따라 하면서 참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부모와 같이 자신도 부모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성장을 멈춥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부모가 가르쳐준 것 이상입니다.
배움에는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배우려는 이에게 주이지는 시간도 끝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배운다면 말입니다. 
 
워런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다고 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책상에 앉아 배우는 것 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니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며 물을 때 빌 게이츠는 이것을 청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청하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어 더 많은 공부를 하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자세가 곧 인생에 대한 자세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를 악하고 절대 없다고 평하십니다.
왜냐하면, 알려는 마음이 없이 표징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실 표징이 요나의 표징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표징은 무언가 알려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알려는 마음이 없이 표징만 요구한다면 그 표징은 그 사람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표징이 아닌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배워서 회개한 것입니다.
이어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라고 하십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아 동물적 본성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아기와 같습니다.  
 
인생에 대한 자세가 배우려 하는 자세와 같습니다.
얼마나 더 배워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느냐가 얼마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려고 하느냐와
비례합니다.  
 
지니가 다시 한번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해야겠습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나 자신을 알고 하느님을 아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는 것은 발전하는 것이고 발전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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