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미카 2,1-5 마태오 12,14-21
만남을 ‘기회’로 삼는 사람들
인생은 만남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만남이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건의 연속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어떤 만남들은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나를 힘들게 하는 만남들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나, 혹은 함께 있으면 더 힘들어질 때 상대를 밀어내거나 내가 숨어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만나고 싶은 대상이시기는 하셨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밀어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바리사이들만 뭐라 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사람들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아”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남에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아프게 하는 이들까지도 주님의 뜻이라면 내치지 않고 품어 안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리옷 유다이고, 예수님은 실제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위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라몬 막사이사이는 그가 세상을 태어난 지 16개월 만에 비율빈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괴질에 걸려 그를 치료하던 의사가 그의 어머니에게 생명을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어린 생명을 단념하지 않고 치료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마침 약 광고를 보고 병 하나를 가지고 자기 집에서 127마일이나 떨어진 마닐라까지
도보로 약을 사다가 치료한 결과 기적적으로 나았습니다.
만일 그 어머니와 같이 정성스런 마음을 가진 어머니가 아니었던들 세계적인 민주주의적 통치자를 만나보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이들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없애버리려는 이유는 바로 이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독서에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탐이 나면 밭도 빼앗고, 집도 차지해 버린다. 그들은 주인과 그 집안을, 임자와 그 재산을 유린한다.”
사람을 가려서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은 바로 이런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하는 우리는 구별하여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관계를 ‘기회’로 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내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내 자신의 사랑을 시험하고 인내를 시험하는 기회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로 삼으려 하는 이에게는 어떠한 만남도 두려움이 아니라 ‘기다려짐’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바다를 건너던 배가 갑자기 불어오는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던 배는 그만 뒤집히려는 듯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배안의 사람들은 모두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중 노인 한사람은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기도를 드리는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배가 뒤집혀 다 죽게 되었는데 당신은 두렵지 않느냐고.
그 노인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나에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 딸은 몇 년 전에 잃고 지금은 작은 딸을 찾아가고 있는 길입니다.
만약 이 배가 뒤집혀 죽게 되면 천국에 있는 큰 딸을 먼저 만나게 될 것이고 다행히 배가 무사히 항구에 닿게 되면 작은 딸을 먼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만남의 소망을 가지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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