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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13 조회수 : 1513

이것을 해보기 전까진 남편을 알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앞의 어린이처럼 되셨기에 아버지께서 모든 것은 내어주셨고 그렇게 아버지를 알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죽기 전 두 딸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아버지를 죽였다.”
딸들은 대답하지 않고 울고만 있었습니다.
딸들은 어머니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불평과 비판과 잔소리를 해 온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명작을 통해 이미 톨스토이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명성과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많은 자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피아도 이런 부족한 것이 없는 삶에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살인을 포함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버렸던 종교에 다시 귀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합니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쓴 위대한 책들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평화를 설교하고 전쟁과 가난을 없애자는 팸플릿을 쓰며 나머지 일생을 보냈습니다.
자기 땅을 무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청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밭에 나가 일하고 나무를 베고 건초를 쌓았습니다.
자기 신발을 만들고 나무 그릇에 밥을 먹었으며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소피아는 사치를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명성과 사람들의 갈채를 갈구했습니다.
돈과 재산을 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아내의 생각과 반대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거의 죄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톨스토이에게 잔소리하고, 질책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녀는 저작권료를 받기를 원했지만 톨스토이는 책을 발행할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거저 주려 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자기의 뜻을 말하면 소피아는 거의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입에는 아편을 달고 바닥을 구르며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우물에 떨어져 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82세가 된 톨스토이는 더 이상 이 비극적이고 불행한 가정생활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눈 오던 밤, 톨스토이는 아내를 피해 추위와 어둠 속으로 나섰습니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1일 후, 톨스토이는 기차역에서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그가 있는 곳에 그의 아내가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결국 소피아가 잃은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마지막에 조금 후회는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 생각에도 전 미쳤던 것 같아요.”
[참조: ‘인간관계론-결혼 생활의 무덤을 파는 가장 빠른 방법’, 데일 카네기, 현대 지성]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라는 말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이들처럼 되라는 뜻입니다.
이 밑에 이런 내용이 따라 나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멍에는 소를 순종시키기 위해 주인이 메어주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주인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아내가 만약 남편에게 순종하면 남편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 
 
이 말은 아드님이 아버지를 아시는 방식은 ‘순종’이가 아버지가 아드님을 아시는 방식은 ‘모든 것을 넘겨주심’입니다.
아내가 불순종할수록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의 것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을 영영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것을 내어줌으로써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써 이해하게 됩니다.
여기서 순종을 배움이 철부지 어린이처럼 되려는 노력입니다.  
 
짐 엘리엇을 비롯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에콰도르 열대 우림 한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원주민들의 창에 무참히 살해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총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발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직후 (미국) 라이프지와 타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며 분노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쓸데없는 선교를 한 다섯 선교사에 대한 비판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ste!) 
 
한 기자가 짐 엘리엇의 아내에게 찾아가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꺼냈을 때 그녀는 그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이 다섯 젊은이의 아내들은 어린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자기 남편들이 갔던 길을 따름이다.
자기 남편들을 죽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시 들어간 것입니다.
다행히 그 부족은 여성과 아이들은 죽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날, 와다니족 추장이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5년 전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다시 오게 된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와다니족은 모두 신앙을 받아들였고 짐 엘리엇을 죽인 그 청년은 와다니족의 목사가 됩니다. 
짐 엘리엇을 가장 잘 안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그의 아내였습니다.
만약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남편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면 남편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남편을 따랐기에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만나면 남편도 아내에게 모든 것을 줄 것입니다.
아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철부지 어린이처럼 순종해야 남편을 알 수 있고, 남편은 아버지처럼 다 내어줄 수 있어야 아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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