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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08 조회수 : 1537

아버지의 영과 일치된 삶의 평온함 
 
 
생후 4주 때 각기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자라다가 39년 만에 난생 처음으로 만난
일란성 쌍둥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은 똑같은 ‘짐(Jim)’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습니다.
키도 180센티미터로 똑같았고, 체중도 90킬로그램으로 똑같았습니다.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조사해보니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났습니다. 
 
- 둘 다 어릴 때 ‘토이(Toy)’라는 이름의 애완견을 갖고 있었다.
- 둘 다 처음엔 ‘린다’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했다가 헤어지고 ‘베티’라는 이름의 여성과 재혼했다.
- 둘 다 아들의 이름을 ‘제임스 앨런’이라 지었다.
- 둘 다 엷은 파란색 ‘쉐보레’ 차를 갖고 있었다.
- 둘 다 똑같은 상표의 담배를 피우고 똑같은 상표의 맥주를 마셨다.
- 둘 다 소방관과 보안관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 둘 다 손톱을 깨무는 습관과 편두통이 있었다. 
 
제퍼슨 의대의 버렌트(Thomas Behrendt) 박사팀은 일란성 쌍둥이들을 각기 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해놓고 한쪽 쌍둥이에게 눈을 감도록 해보았습니다.  
 
그의 뇌파가 즉각 알파파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있는 한쪽 쌍둥이의 뇌파도 동시에 알파파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참조: ‘왓칭 2; 텅 빈 공간이 진정한 나일까?’,
김상운, 정신세계사;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책 저자의 사상은 가톨릭 교리에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다만 예화를 인용할 뿐이지 책 자체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같은 염색체를 가지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같이 자란 쌍둥이들은 커서도 저런 일치를 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품 안에서 오랜 시간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또한 지금도 하느님 품 안에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언제든지 하느님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하느님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비슷해지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나는 고생을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큰 업적을 쌓고 주님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보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실 때도 같은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세상은 천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 예언자들을 죽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세상에 파견된 자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이 아니라 박해가 약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영광을 바라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결국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맙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나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하느님의 주파수에 맞추어놓고 나는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의 마이크가 되어드리면 됩니다.  
 
마이크로 말하는 이가 두려울 수는 있어도, 마이크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나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내가 완전히 죽지 않고서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강의 전에는 걱정이 되어 내용을 되새겨보며 긴장을 합니다.
그러다 끝나고 나면 ‘주님께서 다 하시는 일인데, 내가 왜 긴장을 했지?’라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그러면 알게 됩니다. 
 
‘아, 내가 주님의 영광이 아닌 내 영광을 위해 강의를 하려고 했구나!’
긴장되고 떨리는 이유는 자신의 영광을 찾기 때문입니다.
나를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세상의 구원만 생각한다면 지금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고통은 ‘나’를 생각할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위 쌍둥이처럼 하느님과 닮게 되고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일을 보며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자신의 저서에서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어떻게 버티어냈는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도관들이 윽박지르며 온갖 욕설을 쏟아낼 때도 내 머리엔 시와 이미지가 물밀 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난 자유롭고 행복했지요.  
 
어떤 죄수들은 철조망을 뚫고 탈출하려 했지만, 내겐 어떤 철조망도 없었거든요.” 그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10년간의 경험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저장하여 그 기억을 바탕으로
‘수용소의 군도’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솔제니친은 하늘로부터 오는 영감과 나중에 이것을 통해 쓰게 될 자신의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금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로부터 탈출하여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만을 바라게 될 때 지금의 고통으로부터도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업적도 남기게 됩니다.
나의 영광을 위한 모든 걱정근심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의 쌍둥이가 되어드립시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걱정은 나를 생각할 때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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