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줄 수 없으면 길들일 수 없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느 집을 들어가든지 먼저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것은 엄청 중요한 말씀입니다. 선교의 본질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강형욱 훈련사는 개들에게 평화를 주지 않습니다. 거의 학대 수준입니다.
실제로 동물 보호단체에서 강 훈련사가 심한 학대를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행복과 평화를 주어야 하는데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개훌륭에 어미로부터 애정을 한 달밖에 받지 못하고 데려온 천둥이가 나왔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은 물론 주인까지 자주 무는 개입니다. 교만이 하늘까지 이른 상태입니다.
이런 개에게 어떻게 평화를 줄까요? 아무리 잘해주려고 해도 주인은 개가 무서워 두려움에 떱니다.
이런 개에게는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평화는 주인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당신이 파견하시는 제자들이 남의 집에 들어가 주인처럼 먹고 마시고
잠을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발에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누가 갑인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화는 생존욕구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생명이 보장되면 평화가 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합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부모가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주는 부모에게 자녀들은 순종합니다. 길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부모가 사는 세상에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이렇게 참 평화를 주어야만 누군가를 길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주는 존재가 두려운 존재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를 잃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싫어할까 봐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힘이 강하면 자기가 부모에게
무언가 해 주는 것처럼 여기고 부모가 평화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귀찮은 존재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은 두려운 것을 섬기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보다 돈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지배당하고 그것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내가 속하고 그것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됩니다.
주님께서 파견하신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향을 미치고 싶으면 내가 먼저 그것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주는 생명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디팩 초프라가 자녀에게 한 일이 이것입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먹고살 것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먼저 평화를 주지 못하면 “너희는 이웃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만 생각하며 살아라!”
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평화가 집입니다. 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주인만이 그 집에 사는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것만을 줄 수 있습니다.
평화가 없는 사람이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풍랑에 죽기 직전이었던 사도들을 배 위에서 안심시키시며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 것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도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읍시다. 그러면 평화가 옵니다.
그 평화는 세상 어떤 것도 빼앗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차인표 씨는 모태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을 한 번만이라도 듣기를 원했습니다. 평화를 갈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돈 한 푼 안 받고 ‘지저스, 지저스’란 뮤지컬에서 예수님 역할을 무려 4년이나 했어도 그분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컴패션이란 단체에서 인도 콜카타에 봉사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시달릴까 봐 차인표 씨는 1등석을 타고 갔습니다.
왕처럼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것 자체가 이미 자기 평화는 자기가 책임져 하느님을 평화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해서 목사님이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너희는 소중한 존재다. 너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라는 말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한 지저분한 아이가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런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소중한 존재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분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그분이 주시는 평화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음을 그때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평화를 돈이나 명예, 사람들에게서 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평화를 주시는 당신께 길들지 못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도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평화를 줄 수 없으면 길들일 수 없습니다.
먼저 평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님의 집에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곧 죽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평화이신 분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평화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이웃을 평화가 필요한 사람으로 만듭시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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