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6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6-25 조회수 : 1547

마태오 18,19ㄴ-22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해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얼마 전 누가 보내주어서 ‘어미 판다 이야기’를 이철환 작가가 감동적으로 전해준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미 판다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눈만 내리면 나무위로 올라가는 판다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때는 눈이 열흘 동안 내리고 있는데, 열흘 동안 굶으면서도 나무위에서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숲속 친구들이 아무리 내려오라고 해도 당체 내려오지 않는 거예요.
숲속 친구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기만 한 거죠. 얼마나 미련해 보였을까요?
굳이 굶어 가면서까지 저렇게 나무 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파란 나비 한 마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난 판다를 이해할 수 없어!
나무 위에 올라가서 며칠씩 굶고 있는 저런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하지만 토끼는 나비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
“너는 네가 이해하는 것만 이해 할 뿐이야! 판다를 모르면서 이해할 수 있다 없다 말하지 마.” 
 
실은 판다가 살고 있는 동굴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에는 어미 판다와 새끼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요,
새끼 둘과 오순도순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미 판다는 새끼들을 굶길 수 없어서 먹이를 구하러 나가봐야 하는데, 눈이 내리니까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얀 눈 위에 판다의 발자국이 찍히면 사냥꾼이 그 발자국을 보고 판다의 동굴을 찾아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끼 두 마리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다는 나무위로 올라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굴에는 새끼들이 배고파서 울고 있고요. 
 
며칠 만에 그칠 거라고 생각했던 눈은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어미 판다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빠르게 먹이를 구해오자고 결론을 내린 거죠. 
 
어미 판다는 정말 재빠르게 먹이를 구해서 동굴로 돌아왔습니다.
새끼들이 걱정돼서 엄청나게 노력을 한 거죠. 하지만 먹이를 구해온 어미 판다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발자국을 내리는 눈이 덮어 줄 거라고 믿었는데, 자기 발자국 뒤로 사람의 발자국이 생긴 겁니다. 
 
이제 우리는 어미 판다가 왜 눈만 내리면 나무 위로 올라가는지 이해가 됩니다.
자신의 발자국 자체가 이제는 공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관계라는 것을 맺어갈 때 누군가를 다 이해하려고 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왜 이러는지도 모르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며 자신의 머리를 칠 때도 있습니다. 
 
자신도 온전히 이해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남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려고 하는 데서 오해가 생기고, 또 이별이 오고 모든 고통이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하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1994년 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준세이는 미술 회화 복원공부를 하는 복원사로서 명성도 얻게 되고 동거중인 현재 애인 메미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헤어진 지 3년이 되는 옛 애인 아오이에 대한 사랑이 그립고 생각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메미는 준세이가 잠을 자면서도 아오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매우 화가 나고, 준세이도 아오이를 아직 잊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집니다. 
 
친구에 의해 우연히 아오이가 밀라노의 보석가게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작업도 손에 잡히지 않아 모든 것을 제쳐놓고 아오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아오이는 미국인 마브와 사귀며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상처입고 돌아서는 준세이에게 아오이가 쫓아오며 외칩니다.
“왜 이래?”
“네가 아직 옛날 일로 괴로워하는 줄 알고...” 
 
남자들의 이 야무진 착각에 아오이도 자신의 마음을 ‘거스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괴로워한다고? 나 잊었어! 과거는 다 잊었다고. 나 지금 정말 행복해” 
 
3년간의 오랜 시련의 아픔을 회복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그 때의 열정으로 돌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더 깊은 오해의 수렁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준세이는 스스로 못 잊고 허덕였던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스럽고, 아오이도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자신과 준세이에게 화만 납니다. 
 
공방이 문을 닫게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준세이는 자신이 아오이와 헤어진 것이 돈만 아는 아버지 때문이었음을 듣게 됩니다. 
 
아오이가 아기를 가지게 되었었을 때 준세이에게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중절수술을 하고 왔던 적이 있었는데, 준세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오이에게 화가 나 헤어지자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아기를 원치 않는 모습이 자신을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아오이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준세이의 아버지가 돈으로 아오이에게 준세이와 헤어지라고 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아기를 원치 않는 모습이 자신을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아오이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준세이의 아버지가 돈으로 아오이에게 준세이와 헤어지라고 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오해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해를 하려고 하니까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는 것을 믿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둘의 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인 것입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간에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를 아무리 이해로 풀어보려 하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개성공단이 잘 돌아가다가도 한국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이 그들의 자금줄이라는 식으로 말하니 기분이 상해서 사람들을 다 철수시켰습니다.
물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수입이 줄어드니까 다시 대화를 먼저 제안했습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도 나돌면서 다시 좋은 관계가 시작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회담 참가자들의 ‘격’을 맞춰줄 수 없다고 하자, 하루 남겨놓고 회담이 다시 결렬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해보다는 자존심이 더 크게 둘 사이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이기는 길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믿음만이 앞으로의 관계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를 잘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해하려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그 후엔 갈등, 이별의 고통만 남을 뿐입니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아들린을 위한 발라드’, 이 곡은 한 남자가 자신이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여인
‘아들린’을 위하여 만든 음악이라고 합니다. 
 
서로 너무도 사랑했던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남자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불행하게도 전쟁터에서 그만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을 잃고 말았답니다.
그런 모습으로 그녀 곁에 머물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떠나갔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녀의 슬픔은 아주 컸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고향을 떠나 있던 남자는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결혼식이 열리는 성당으로 갑니다.
자신이 사랑했었던, 아니 지금까지도 가슴 아프게 사랑하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서.
결혼식에 도착한 그는 그만 주저앉고 맙니다 
 
 
그녀의 곁에는 두 팔도, 두 다리마저도 없는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그는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아프게 했던가를, 또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던가를.
남자는 그녀를 위해 눈물 속에서 작곡을 합니다. ‘아들린을 위한 발라드’ 
 
관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셨으면 맺어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