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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6-11 조회수 : 180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평화로 평화를 얻는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지혜로운 노신사가 정년퇴직을 한 뒤 고등학교 근처에 작은 집을 구입했습니다.
처음 이삼 주 동안 그는 평화와 만족감 속에서 은퇴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오후, 세 명의 학생이 방과 후에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 차서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길가에 세워 둔 휴지통들을 신나게 걷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그 와장창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노신사는 뭔가 조치를 취할 때가 됐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튿날 오후. 노신사는 거리로 나가 여전히 쓰레기통을 빵빵 차며 걸어오는 어린 소음꾼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멈춰 세우고서 노신사는 말했습니다. 
 
“너희들 정말 재밌게 노는구나. 너희들이 그처럼 기운 넘치는 걸 보니 나도 기쁘다.
나도 너희 만한 나이였을 때 그렇게 놀곤 했었지. 내 부탁을 들어주겠니?
날마다 여기로 와서 계속 휴지통을 두들겨 패 준다면 너희들 각자에게 1달러씩을 주마.” 
 
신이 난 학생들은 방과 후마다 그곳으로 와서 어김없이 쓰레기통에 발길질을 퍼부었습니다.
며칠 뒤 노신사가 다시 학생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굴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놀이가 내 생활비에 큰 타격을 주고 있구나.
더 주고 싶지만 이제부턴 너희들에게 쓰레기통을 차는 대가로 50센트밖에 줄 수가 없다.” 
 
소음꾼들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노신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방과 후의 소동을 계속했습니다.
며칠 뒤 이 지혜 많은 노신사는 다시 학생들을 기다렸다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난 아직 사회보장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 이제부턴 너희들에게 25센트씩밖에 줄 수 없구나. 너희들도 이해하겠지?” 
 
그러자 학생들 중의 대장 격인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코 묻은 25센트를 받으라고요?
고작 동전 하나를 받기 위해 우리더러 날마다 시간을 낭비하며 쓰레기통을 걷어차란 말예요?
정말 제정신이 아니시군요. 
우린 그만두겠어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어요.”
그리하여 노신사는 생애 마지막 날까지 평화와 정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노신사가 자신의 평화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아이들에게 윽박질렀다면
평화를 찾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 아이들이 더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노신사를 괴롭혔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빌어주라고 합니다.
그래야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평화롭고,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평화가 자신에게 돌아와 또 평화롭다고 하십니다.
평화를 얻는 방법은 평화를 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증오와 보복으로 자신의 평화를 얻으려고 합니다.
나에게서 나가는 것이 미움인데 어떻게 사랑으로 가득차고 평화로 돌아오기를 바라겠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을 섬멸하기 위하여 전쟁을 수차례씩이나 했다고 해서 테러리스트들이 줄어들었겠습니까?
지금 그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더 큰 테러를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내가 주는 것으로 내가 가득차고, 내가 주는 것이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어느날 제자 리오에게 말했습니다. 
 
“설사 자네가 소경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게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기쁨일 수 없네. 
 
설사 자네가 모든 외국어에 정통하고 성서를 깊이 이해하고 예언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기쁨일 수 없네.
설사 자네가 천사처럼 말하고 모든 식물과 동물에 대해 잘 알고 인간의 특징을 모조리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기쁨일 수 없네.
그리고 설사 자네가 모든 불신자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기쁨일 수 없네.” 
 
여기까지 들은 리오는 어리둥절하여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완전한 기쁨인가요?”
“그건 비가 내리는 싸늘한 날에 자네가 비에 흠뻑 젖어 굶주린 창자를 안고 수도원에 와서 문을 두드렸을 때 수도자인 접수계의 사람이 화가 나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기에 자네가 ‘나는 형제요’ 하고 대답하자 ‘당신은 게으름뱅이요, 여기서 나가 줘요’ 하는 말을 듣고도 자네가 불평하지 않고 참는다면 그건 완전한 기쁨이지. 
 
상대방이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을 때 그가 밖에 나와 당신에게 욕하면서 당신을 쫓아내어도
참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완전한 기쁨이지.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면서 문을 두드렸을 때 상대방이 나타나 자네를 진창 속에 쓰러뜨리고
몽둥이로 때려도 그 고통을 예수님처럼 받아들인다면 그건 완전한 기쁨이지.” 
 
프란치스코는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조차도 저항하지 않고 평화로 대하면 그 평화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그 기쁨은 소멸되지 않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옵니다.
기쁨과 평화를 얻는 방법은 누구를 만나든 기쁨과 평화로 대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가져다 대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남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발끈하지 맙시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하지 말고, 항상 선으로 돌려줍시다. 
 
예수님도 내가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해 주라고 하십니다.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이 결국에는 나에게로 되돌아와 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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