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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6-04 조회수 : 1836

요한 21,20-25 
 
"너나 잘 하세요!" 
 
 
박찬욱 감독의 유명한 복수 시리즈인 ‘친절한 금자씨’에는 잊혀지지 않는 장면과 대사가 나옵니다.
바로 “너나 잘하세요!”란 대사입니다.
최민식이 이영애 딸의 목숨을 담보로 위협하자 이영애는 살인누명을 쓰고 13년 동안 복역합니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는 교도소 안에서 착하기로 소문이 난 상태고 개신교를 믿으며 진심어린 참회의 모습을 보입니다. 
 
목사님은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신다며 죄를 깊이 통회하라 하고 그렇게 깊이 뉘우치는 이영애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감형이 되어서 13년 만에 출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영애의 이런 모든 것은 복수를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출소할 때 목사가 신도들과 함께 두부를 들고 마중 나왔습니다.
그러나 180도 바뀐 태도의 이영애는 그 두부를 바닥에 버리며 고상하게(?) 말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하라는 말은 박찬욱 감독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한 개신교 목사님의 ‘너나 잘하세요’란 풀이를 들어봅시다. 
 
이런 금자씨의 선택이 옳다는 것이 전도사가 살인마에게 머리를 숙이고 돈을 받는 장면을 통해서 입증된다. 
박 감독은 “이 돈을 주님의 일을 위해서 유용하게 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전도사의 입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기독교가 이 수준 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조롱을 한다. 
 
한국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군사 독재정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대해서 변변한 저항은커녕 그들의 머리 위에 복을 빌어왔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축복과 안정을 보장하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논리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돈을 섬겨 왔으며, 이것이 오늘날은 기득권을 흔드는 세력에게 저항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박 감독의 지적이 분명히 맞다.
[출처: 용산에서 어느 목사 이사야의 글] 
 
이 목사님은 개신교가 걸어왔던 역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시지만
신앙에는 충실한 분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말로만 속죄를 외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현실은 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꼬집은 것입니다.
‘나는 알아서 잘 할 테니 나 죄인취급하기 전에 너부터 좀 신경 써라’라는 표현을
“너나 잘하세요”란 말로 누명쓰며 살아온 이영애의 입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운전병을 하였습니다. 
운전병은 행군을 하지 않습니다.
행군하는 사람들을 차로 돕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대하기 얼마 전에 운전병들도 다 행군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운전병은 행군은 하지 않아도 축구와 같은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저는 군 생활 마지막을
행군으로 멋있게 장식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정도 행군을 하다 보니 좀처럼 걷는 것에 익숙해있지 않던 같은 운전병 후배들이 하나 둘씩 더 이상 못 걷겠다며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년에 좋은 표양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그들의 총도 들어주고 그들을 부축해주며 대단한 영웅이나 된 양 활개를 치며 힘차게 걸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도착할 때쯤에 무릎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못 걸을 지경이었습니다.
간신히 도착은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말년 휴가를 나와서 병원에 가보니 양쪽 무릎 인대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휴가동안 침을 좀 맞으니 복귀할 때는 괜찮아졌습니다.
문제는 한 번 늘어난 인대는 또 늘어날 수 있으니 주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내 몸이라도 잘 간수할 걸!’ 하며 괜히 내 자신의 능력도 모르고 설쳤던 내 자신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군대를 재대 하고 겨울에 본당 청년들과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걸어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짐들이 많았습니다. 
 
여자 청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이 당연히 짐을 더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면 술값이 비싸기 때문에 소주를 많이 사서 가방에 담았습니다.
저는 또 쓸데없는 기사도 정신으로 그 무거운 소주를 제 가방에 가장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첫 날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나르다시피 산을 올라갔는데, 그만 군대 있을 때 늘어났던 무릎의 인대가 또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나머지 이틀 동안 무릎에 압박붕대를 감고 가장 늦게 뒤쳐져서 간신히 쩔뚝거리며 일행을 따라잡기 바빴습니다. 
다른 모든 여자 청년들보다도 뒤쳐졌습니다.
저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여자들도 저렇게 잘 걷는데 남자가 저게 뭐냐라는 식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내 자신 먼저 챙기지 않으면 남을 도와주기는커녕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는 법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어떻게 순교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어보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세상 말로 하자면 ‘너나 잘하세요.’, ‘네 일이나 신경이나 쓰세요.’ 정도의 뜻이 될 것입니다. 
 
저는 누가 다른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럼 본인 자신은 다 이해하세요?” 라고 되묻습니다.
나도 사실 나를 잘 모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혹은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라며 후회를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시선을 두는 만큼 나를 볼 시간은 줄어든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삶은 나를 돌아보기에도 너무 부족한 시간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면 예수님은 항상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도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라도 잘하려고 노력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각자 자기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오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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