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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6-01 조회수 : 1650

요한 17,11ㄷ-19 
 
구원의 확신을 위한 두 조건: 이름과 진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당신 제자들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아버지와 일치하는 것처럼 제자들의 공동체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가리옷 유다는 제자들에서 벗어나서 결국 스스로 구원을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하나가 아닌 하느님을 상상할 수 없듯, 하나가 아닌 구원의 공동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일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를 아버지께 받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는 ‘이름’이고 하나는 ‘진리’입니다.  
 
먼저 이름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면 자신이 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정체성과 믿음입니다.
제가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일원이 되려면 이 나라에 맞는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이름은 이 나라가 인정하는 한 시민이었던 저희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주민등록증이 생겼고 이 이름으로 나도 대한민국 시민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법 체류자들이 있지만 유럽은 더 많습니다.
불법 체류자들은 매우 불쌍합니다.
그들이 경찰에게 발각되면 거의 인간 취급받지 못합니다.
경찰들은 먼저 그들을 때리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경찰입니다.  
 
제가 유학 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집시들이 저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갔습니다.
처음 당해보는 소매치기여서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조금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한 여자의 손목을 붙들고 계속 얼마 전에 배운 단어인 ‘폴리지아’(경찰)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큰 액수의 지폐는 계속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폴리지아를 외쳤더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진 모든 돈을 저에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탈리아에서 집시들의 돈을 턴 유일한 한국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이렇게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자녀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바로 ‘성사’를 통해서입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세례명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느님께서 당신 나라 백성으로 인정한 교회가 준 이름입니다.
제 이름도 나라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시민이었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 효력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그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요한 17,12) 
 
여기서 “멸망하도록 정해진”의 직역은 “멸망의 자녀”입니다.
가리옷 유다를 가리킵니다.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이 받은 이름에 대한 확신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름에 대한 확신을 지니도록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코리텐 붐 여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다고 합니다.
소련의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올리려고 하는데, 예배당 문을 걷어차면서 두 명의 소련 군인이 들이닥쳤습니다.
기관단총의 총부리를 겨누어 흔드는 두 군인은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5분간의 시간을 준다. 예수를 버리고 살 사람은 5분 내로 예배당 밖으로 나가라.
예배당 안에 남아 있는 자들은 5분 후에는 모두 죽음을 맛볼 것이다.” 
 
모든 신자가 이 무서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의 믿음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견디고 있는 순간,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계를 바라보고 서 있던 군인들은 “마지막 50초다. 또 나갈 사람은 없느냐?” 라고 소리쳤습니다.  
 
남아 있는 성도들의 얼굴은 모두 거룩한 표정으로, 자기들의 주님을 위해 죽을 각도가 되어 있는
비장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드디어 군인들은 안으로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더니 총을 땅에다 내려놓은 두 군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진정으로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주님께 함께 경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받은 이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성호경’입니다.
언제 어디서건 성호경을 그을 수 있다면, 심지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람 앞에서도 성호경을 그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름을 지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닌 것에 참 행복과 기쁨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3)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진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계신 듯이 살면 진리를 지닌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해야 합니다.
곧 사랑의 행위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느님의 뜻이고 법입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의식만 가지고 범죄를 저질러도 될까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법을 지키며 세금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 유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기를 망가뜨립니다.
사람은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거기서 요구하는 의무를 다함으로써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7-19)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아버지의 법을 지켜 거룩하게 되신 것처럼, 당신은 당신 공동체에 당신 법을 주어 그 법으로 그 공동체의 일원들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도 우리나라에서 살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배려하고 봉사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커다란 공동체에 머물기 위해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공동체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옥사나 말라야를 생각해봅시다.
인간이지만 자신이 개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인간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이렇게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그 공동체에 머물려고 노력하면서 거룩하게 됩니다.  
 
이름과 진리, 이것을 간직합시다.
이름은 내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입니다.
이는 기쁨을 줍니다.
또 진리는 그 믿음답게 살아 구원의 공동체의 일원임을 증명해내는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이기에 당연히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을 아는 삶입니다.
이로써 거룩해집니다.
나에게 이 이름과 진리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구원받고 오늘도 거룩해져 가고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 자녀라 항상 기쁘며, 그래서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매일 거룩해지고 있다면
나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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