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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5-19 조회수 : 1703

요한 15,9-11 
 
타인이 지옥일까, 혼자가 지옥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당신도 제자들을 사랑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아버지와 이루는 사랑의 관계를 제자들과도 이루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공동체에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그 공동체가 하느님 삼위일체 모습을 닮던지, 아니면 모기떼와 같은 모습을 닮든지 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수준에 따라 그 구성원들이 느끼는 기쁨도 다릅니다.  
 
하느님 삼위일체 공동체의 행복은 완전한 사랑에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교회도 당신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법을 따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그 공동체에 속해서 오는 기쁨이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예수님께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제자들도 똑같아 느끼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행복을 공동체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느끼는 행복보다 그 의무를 수행하는 고통이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 랍스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한 주인공이 이혼을 통보받습니다.
이런 경우 그런 사람들은 한 호텔로 끌려갑니다. 그 호텔 안에서 일정 기간 안에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혼인합니다.  
 
이런 것이 싫은 주인공은 그 호텔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몰래 숨어 혼자 살아가는 사람 중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사실을 안 독신자 대장은 여자의 눈을 잃게 만듭니다.
이 사회는 결혼해서 살려면 공통점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난시라는 것만이 공통점이었는데 이제 둘은 공통점이 없어진 것입니다.
남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신도 눈을 잃어 눈이 보이지 않게 되던가, 아니면 랍스터가 되어 동물처럼 100년을 살던가.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솔로의 삶을 지향하여 고생 안 하고 솔로 지옥에 갇힐 것인지.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신 이유는 관계를 맺음이 혼자 있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관계 맺으시는 것처럼 타인은 지옥이라면 혼자 지내는 것보다 관계를 맺어감이 더 행복합니다.  
 
1997년 허난성, 당시 나이 50의 노총각 장 솽치 씨는 쓰레기를 주워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겨울 짚 더미 속에 버려져 있던 4개월 된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자신도 고아로 자란 장 씨는 가족이 없는 슬픔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아기의 아빠가 되어주기로 결심합니다. 
 
하얀 비둘기란 뜻의 ‘장 백기’로 딸의 이름을 짓고 혹시 친부모가 백기를 찾을지 몰라 재산의 절반을 털어 딸의 증명사진도 찍어둡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딸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먹을 것도 없으면서 지극정성으로 백기를 돌봤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사춘기가 된 백기는 아빠를 원망했고 아빠는 그때마다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백기가 상처받을까 봐 여전히 버려졌던 아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커가면서 아빠와 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을 한 백기는 결국 아빠가 버려졌던 자신을 거둬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아빠에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백기는 도시로 나가 닥치는 대로 일합니다. 그리고 올해 스물넷이 된 백기는 놀랍게도 연 매출 190억에 달하는 한 회사의 CEO가 됩니다.
이제 백기는 74세가 된 아빠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큰 세상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랐습니다.
베이징에서 창업하여 7년 만에 사장이 되었는데 지금은 회사가 1억 위안(약 190억) 정도의 가치가 됩니다.” 
 
그녀는 아빠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예 캠핑카를 사서 아빠와 함께 세계 일주하고 있습니다.
또 연애 한 번 못하고 평생 혼자 산 아빠를 위해 결혼도 시켜드렸습니다. 
[출처: ‘버려졌던 갓난아기의 보은... 노총각 아빠에게 일어난 기적’,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 
 
장 백기 씨를 예수님이라 가정하고 장 솽치 씨를 하느님 아버지라 가정해봅시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람의 아들로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행복을 모르고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드님을 부르셔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세례 때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은 장 씨가 딸 백기에게 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는 법이 있습니다. 받았으면 주어야 합니다.
그만한 사랑을 받았으면 그만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게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그 보답을 하기 싫으면 그냥 공동체에서 오는 소속감의 행복을 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아버지의 법을 따랐습니다.
백기 씨도 아버지께 받은 것을 보답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드립니다. 
 
이 가운데 한 여인이 또 이 공동체의 행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백기 씨가 아빠에게 소개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도 이 공동체의 행복에 참여하려면 분명 백기 씨가 자신에게 베푼 대로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행복은 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사랑에 보답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공동체의 행복을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9-11) 
 
참 하느님 나라의 행복은 우리가 성당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가족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도록 사랑의 법으로 살아갑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그 공동체에 들어오고 싶어서 줄을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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