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5-18 요한 14,21-26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제가 지난 사순절 때 결심했던 것은 사순특강 요청을 거절하지 말고 다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무 번 정도의 사순특강을 하였습니다.
반응이야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은 칭찬과 감사를 받았습니다.
아프라카 선교를 위해 기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책도 함께 팔았습니다.
그러나 특강이 다 끝난 마지막 순간에 느낀 것은 ‘공허함’이었습니다.
나름 고생하며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느꼈는데, ‘다 부질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엄습해왔습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묵상해보니 저는 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강의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린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나 또한 보상을 받고 싶어 했었던 것입니다.
칭찬과 감사를 많이 받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당연히 그것을 받아야만 한다고 믿게 됩니다.
사실 아무리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광 또한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오롯이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앉은뱅이를 고쳐주어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려 할 때
매우 슬퍼합니다.
그리고 설득하고 설득하여 그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은총은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기 때문에 영광도 받을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 주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그 기대에 합당하지 못하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주님께 해당하는 주님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전하면서 받는 영광이 있다면 그 또한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사람들에게로 가야하고 또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은 주님께 올려 드려야하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 안에 머물게 되면 그것이 독이 됩니다.
선악과가 주님께 해당하는 것처럼 영광도 주님께로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을 주실 때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받아야 했던 상처 때문일 것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그의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었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늙고 병약하였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공연을 마쳤을 때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의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우리 또한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해야겠습니다.
마음을 채워주시는 분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영광을 올릴 줄 아는 이들에게만 성령을 베푸시어 그 마음을 기쁨과 평화로 채워주십니다.
주님을 전하건 또 무언가를 베풀어주건 사람에게서 절대 보답을 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면 공허하지만,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면 주님은 당신 영광이신 성령님으로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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