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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3-10 조회수 : 1946
3월10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마태오 7,7-12 
 
무엇이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반드시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웃이 바라는 것을 그대로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이를 소위 ‘황금률’이라 합니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나도 남에게 해주고, 남이 나에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나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이 그것을 하느님께 청할 때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우와한 비디오’에 ‘1년째 축축한 화장실에서 생활하는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냄새나는 가스를 주입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집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피해의식은 얼마 전 옆집 아주머니와 말다툼하고 나서 일어났습니다.
옆집이 집을 싼값에 팔도록 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여기고 할머니는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화장실에서 먹고 자고를 합니다. 
그러며 옆집이 이 사실을 알면 안 된다고 쉬쉬합니다.
또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제작진의 말에 크게 화를 냅니다. 
괜히 와서 자기만 이상한 사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오히려 냄새가 더 나는 곳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일까요?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 수는 없었을까요? 또 할머니를 다시 거실로 나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 따르면 나에게 닥치는 일은 내가 이웃에게 하려고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할머니가 이웃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할머니가 끌어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절대 틀리지 않는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어떻게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야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좋은 것을 받습니다. 
이에 제작진은 며칠이고 할머니와 함께 화장실에서 먹고 자며 지내기로 합니다.  
 
할머니와 며칠을 함께 화장실에서 지냈을 때 할머니는 미안했는지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작진들을 위해 처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차려놓습니다.
할머니가 거실을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이웃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이 할머니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행복은 항상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웃이 행복한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웃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즉시 나에게 마련된 행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이웃이 행복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구원과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것, 곧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물복도 해당합니다.
부자들은 이 원리를 잘 압니다.
그래서 이웃이 부자가 되는 것을 시기하고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늘에서 주기로 마련된 부를 받을 자격을 스스로 잃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기뻐하는 마음수련을 해야합니다.  
 
가끔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데 자신은 고생만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이웃의 행복을 바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행복하다면 겉모습만 행복한 것이고 불행해 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만 그럴 뿐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면 그 고통받게 보이는 시간이 그 사람에게는 이웃에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느님께 받는 시간입니다.  
 
유기성 목사의 ‘감사가 가장 큰 믿음이다’라는 설교 첫머리에 유 목사가 중국에서 북한 이탈주민을 위해 사역하다 공안에게 붙잡혀 1년 반 동안 옥살이하다 온 다른 목사님과 대화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목사님은 중국에서 북한 이탈주민 200여 명을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하고 도움을 주어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 정도 범죄라면 중국에서 한 20년 형을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1년 남짓 살고 석방된 것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동안 바쁘게 살던 나머지 하느님과 깊은 친교의 시간을 갖지 못했는데
그 1년 반 동안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큰 만남의 시간을 가져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남을 위해 고통받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하느님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이 법칙엔 오류가 없습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 상황에서건 분명 행복을 선물해주십니다. 
그렇게 당신 황금률의 원리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이해하면 부자도 될 수 있고 행복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키우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함을 우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박해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국 ‘의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기가 2천 번을 넘어져도 결국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는 것은 일어서려는 의지를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지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믿음은 주시지만, 의지는 주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결국,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는 것은 의지로만 증명됩니다.  
 
중국이 서방세계를 향하여 문을 열기 전, 그러니까 문화혁명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한 중국 스파이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완전한 미국인 행세를 했습니다.
우선 그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서양사람이었고, 중국 인구가 10억이 넘으니까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서양식 얼굴을 가지 사람을 고르기가 어렵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고 합니다. 제스쳐도 전형적인 미국 사람의 제스쳐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수상하게 여긴 한 정보요원이 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럽 여행 중에 한 시내버스 곁에 서서 일종의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미국국가를 휘파람을 불어봤습니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여러 나라에서 온 민족이 살고 있기에 미국에 살고 있어도 내가 미국인이라고 느끼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미국에 사는 것을 느낄 때는 휴일이 되어 TV에 풋볼을 보고 앉아있을 때 미국국가가 나오는데 미국국가를 부를 때야 ‘아, 내가 미국인이지!’ 하고 느낀다고 합니다.  
 
휘파람으로 미국국가를 불러도 그 사람이 전혀 반응이 없자 그다음에는 중국국가를 휘파람으로 불러보았다고 합니다.
탁 쳐다보더랍니다. 
계속 휘파람을 불고 있으니까 발로 장단을 맞추더랍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스파이다’라는 확신을 가진 정보요원은 결국 그를 체포하게 됩니다.
그는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미국인으로 사고하고 미국인이 사는 삶을 모방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완전히 미국인이 되려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불러야 하는 국가는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계명입니다.
이를 위해 이웃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면 기뻐하고, 또 행복하지 않은 이웃은 행복하게 해주려는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의 그 노래에 장단을 맞추어야 진정한 하느님 나라 백성입니다
이웃의 기쁨과 행복을 위한 ‘의지’, 이것이 황금률을 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유일한 평가의 기준입니다.  
 
내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 것인지 아는 방법은 내가 지금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
곧 그 의지가 무엇을 향하는지 보면 됩니다. 그러면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받습니다.
청하는 것을 받고 싶거든 그 청하려는 것을 의지적으로 이웃에게 기쁘게 내어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마십시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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