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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3-03 조회수 : 1850
3월2일 [재의 수요일]  
 
마태오 6,1-6.16-18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소진한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뿌리며 삶의 유한함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재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묵상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든 다 재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특별히 위선자들처럼 남에게 잘 보이려고 살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위선자’인 그리스어는 무대에서 남에게 박수를 받으려고 공연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였습니다.
남의 기대에 따라 살면 삶을 허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의 시선을 위해 평생을 살다 재가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많은 철학자는 남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며 살라고 권합니다.
남의 시선의 노예가 되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라는 말입니다. 
더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사람은 다 누군가의 욕망을 성취시켜주며 삽니다. 나를 위해 살라는 말은 자아를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삽니다. 
곧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삶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삶입니다.  
 
우리는 분명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며 삽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살아서도 안 되고 남을 위해 살아서도 안 됩니다.
내가 욕망을 채워주며 사는 그 대상이 내가 재가 되면서까지 그 욕망을 채워줄 가치가 있는 대상인지 분명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튜브 ‘멘탈케어’란 심리학 채널에 ‘연수익 1,300억 찍고 느낀, 돈이 자유를 주지 않는 이유’란 박진영 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진영은 처음 성인이 되어 꾼 꿈이 20억을 버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20억을 은행에 넣어두면 그 이자로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990년대 20억이면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연대 지질학과를 다니던 박진영은 지금 전공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뒤늦게 음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음악성보다는 비닐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 관객에게 호감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퍼포먼스가 잘 먹혀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초고속으로 지금의 JYP 엔터테인먼트를 차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20억을 얻는 데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JYP는 현재 시가 총액 2조 원에 달합니다. 여기서 박진영이 보유한 지분은 15~20%입니다.
한 해 1300억의 이익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이 오래갔을까요? 
금방 무너져내렸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먹고 살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그 이상의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박진영은 돈이 있는데도 왜 행복하지 못한지를 생각했습니다. 
돈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도 내가 돈을 많이 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모님이나 가족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족 때문에 조금이나마 덜 허탈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박진영은 이제 행복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명예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아무도 만족해주지 못할 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이 타인이 원하는 것과 일치할 때 옵니다.
그러니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가 추구해 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인생의 목표를 잘못 세웠구나!’ 그래서 새로운 꿈을 꿉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뒤늦게 찾는 것은 명예였습니다.
그래서 그도 목표를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라는 ‘명예’로 바꿨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자신이 작곡한 곳을 빌보드 차트에 올리겠다는 꿈을 꾼 것입니다.
그리고 2004년 그는 기적적으로 자신이 작곡한 곡 ‘The love you need’를 빌보드 4위까지 진입시킵니다.
세계적 명성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행복을 느낄 줄 알았는데 또 무너져내렸다고 합니다.
처음엔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힘들고 벅찬데 살아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에 좌표가 무너졌습니다.  
 
박진영은 ‘왜 목표를 이루고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때 깨달은 게, 내 꿈이 잘못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면 ‘허무’하고 안 이루어지면 ‘슬픈’ 목표에요. 답이 아니에요.” 
 
그는 꿈이라는 것에서 ‘무엇을 위해’가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은 ‘왜 태어났을까?’로 연결됩니다. 
진화론으로는 이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진화론이 주는 삶의 의미는 생존인데, 우리는 살아남는 목적만으로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분명히 나를 만든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 존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한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목표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이유를 찾아야만 합니다.  
 
“돈을 벌어보니까 한 3분의 1은 행복해지더라는 거죠. 그다음에 명예와 사랑을 받으니까 훨씬 더 행복해요.
그런데 또 허무해지기 시작하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남을 도와야 한다’라고 해서 도왔더니, 꽤 많이 행복해지더라고요. 
근데 점점 느끼는 것은 아무리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다 주더라도 결국은 세상과 인간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모르면 결국은 끊임없이 쓸쓸하고 혼란스럽고….” 
 
아기는 처음에 자기 자신을 만족시킵니다. 
그거면 그만입니다. 
젖을 주는 엄마에게 고맙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동물 수준의 행복입니다. 
아이는 차차 깨달아갑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주는 것이 행복임을.
그래서 부모가 바라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런 삶은 나를 소진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나를 창조한 이를 위해 내가 소진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나를 다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서 목수 생활을 하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찾으신 것이 바로 이 삶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처럼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순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누구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며 사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자아를 충족시켜줘 봐야 남에게 피해만 주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짐승이 아닌 이상 나의 삶의 목표가 이웃도 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기대는 유한합니다. 그리고 보답도 유한합니다.
내가 재가 되었을 때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피노키오는 한 나무토막 아이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피노키오는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가 아니라 늑대와 서커스 구경꾼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당나귀가 되어갑니다.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를 창조한 분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며 사는 게 인생이라면, 나는 나를 창조하신 분의 욕망을 채워주며 사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그분은 다시 나를 재에서 부활시켜 새로운 나를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사실 창조주는 나를 무(無)에서 창조하셨으니 재에서 재창조하는 것은 일도 아니십니다.  
 
어린이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때 정말 행복한 이유는 부모를 자신의 ‘존재 이유’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춘기가 지나면 더는 부모가 존재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존재하게 만드신 분이 계시고 나는 그분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며 살아가겠다는 것. 이것은 선택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느꼈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진정한 창조자로 선택하고 그분의 기쁨을 나의 뜻으로 삼을 때 어린아이의 행복을 회복합니다. 
 
사순은 머리에 재를 뿌리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고, 누구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살 것인지 선택하는 시기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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