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입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울였는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진시황제의 불로초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오만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젊은 피의 수혈, 영약, 칼로리 섭취 제한, 채식, 마법의 혈청, 불가리아 요구르트, DHA 등등…. 이런 노력이 실제로 평균 수명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뜻밖의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19세기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오래 살기 위해 엄격한 생활 수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담배, 커피, 술 등을 포함해서 자극적인 음식을 삼갔고 식사량을 제한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건강에 지장을 주는 것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콩트는 몇 세까지 살았을까요? 이토록 애를 쓰고서도 59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 안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음을 지배하고 계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필요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 표징의 요구 전에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모든 기적을 단순히 사기꾼이 보여주는 요술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 믿기 싫어하는 불신과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표징을 외면하는 이 세대에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봤자 그들의 악한 마음만 더 커질 뿐 이로운 것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셨던 것입니다.
죽음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놀라운 표징을 발견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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