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는 지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거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것도 20대의 젊은 아내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2세(아기)까지 갖게 되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능력 있네.”, “아이고, 주책이야.”
역사 안에서도 큰 나이 차의 사랑을 갈구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괴테는 72세에 19세의 소녀에게 청혼했었던 사실로 매우 유명하지요. 현대에도 큰 나이 차의 결혼을 한 사람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24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큰 나이 차의 결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물질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외적 이유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큰 나이 차를 극복할 수 있게 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합니다.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많은데도 사랑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지려는 것 같습니다.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80세의 할머니에게 “여성은 몇 세에 욕망이 사라집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겨우 80세밖에 안 되었는데….”
욕망이 사랑지지 않듯, 사랑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없고, 하느님을 찬양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를 군중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교도들이 사용했던 행동과 말로, 유다인들은 이를 마술 행위로 금지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고쳐 줄 수 있으셨을 텐데, 왜 금지하는 행동까지 하시면서 고쳐 주셨을까요? 이교도들의 예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갓난아기를 보면 너무 예뻐서 안아주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고, 깨물어주고 싶지 않습니까? 갓난아기는 이런 행동들에 사랑을 느낍니다. 또 이를 보는 사람들도 사랑을 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만들어가면서 사랑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로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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