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같이 여행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갈 때면 늘 혼자 떠나는 여행을 선택합니다. 또 밤에는 누구를 만나서 보내는 것보다는 제 방에서 조용히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저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외롭지 않으세요?”
혼자 여행을 떠나도, 또 홀로이 책을 읽고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외로움을 느낍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하늘나라에 가신 뒤에 느끼게 된 감정입니다. 내 편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을 원래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단지 나를 믿어주는 내 편이 있기에 혼자 있는 것도 괜찮은 것뿐이랍니다.
다른 이들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즉 ‘우리’로서 이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나’입니다. 상대방이 밉다고 혼자서 살기 시작하면, ‘나’는 더 힘든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주는 사랑이 나에게서 나올 때, 사람들 역시 나와 함께 하려 할 것입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복음에 나옵니다. 바로 주님으로부터 위선자라는 말을 들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편과 자기 편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했습니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 자세한 규율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사람들을 분리했습니다. 실상 그들이 말하는 ‘조상들의 전통’은 십계명이 아닌 인위적인 규율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손 씻는 예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교도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 갔다 오면 부정 탔다고 해서 몸을 예식으로 정결해야 했습니다. 위생절차가 아니라 손을 물에 담그거나 몸에 물을 뿌리는 종교예식일 뿐입니다. 내부적인 부정을 벗겨낼 수 있다며 외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 씻는 예식은 식사 전과 후, 때에 따라서는 식사 도중에도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제관들이 종교적인 예절을 행하기 전에 했던 것인데, 이를 일반 백성에게도 예절적으로 행하도록 부과한 것이었습니다. 원래의 뜻은 무시하고 그냥 자기 편과 아닌 편으로 나누면서 자기 편이 아니면 죄인으로 취급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함께’가 아닌 ‘자기 편’만 생각하는 그들을 주님께서는 인정하실 수 없었습니다.
외로움이 많은 세상입니다. 내 뜻과 다르다면서 단죄해버리는 못된 습관이 외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더 깊이 머물러야 합니다. 바로 나부터 그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