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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2-01 조회수 : 1151

꿈에서 본능이 통제되지 못하는 이유: 잠이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  
 
 
오늘은 우리의 명절 ‘설’입니다. 
설은 한 해의 시작입니다. 
시작은 마침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심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있으라는 내용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깨어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주인이 그들을 시중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한 명의 종을 대상으로 시중들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이라고 하십니다. 
 
또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에게 시중들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이미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에 머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유튜브에 개신교 ‘다니엘라’라고 하는 여자 청년의 간증이 있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이 자매는 부모님을 지독히 미워하였고,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그 외로움 속에서 동방신기라는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팬클럽 일원이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동성애자들 때문에 자신도 동성애자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그녀를 깨어날 힘을 주지 못했고, 그녀는 예뻐지고 유명해지려는 것, 육체의 쾌락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두바이로 가서는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렸고 어느새 인스타 유명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은 텅 비어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가끔 나가기는 했지만, 설교시간에 나가 화장을 다 고치고 돌아오면 목사님 설교는 이미 끝나있는, 뭐 그런 신앙인이었습니다.
외로워도 보았고 유명해져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먼지를 먹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라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찬양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 오래된 동영상이 그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1990년대의 교회 집회 영상이었습니다. 
 
세련되지도 않고 그야말로 오래된 기도회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는 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기도하며 찬양하는 그 뜨거움이 다니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다니엘라는 지금 청년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그런 뜨거운 교회 공동체가 사라진 것이라 말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찾지 않고, 무엇보다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는데 왜 요즘 친구들이 하느님을 못 만나냐면 정말 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교회가 없어서 그래요.
제가 하느님 그렇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저같이 악한 자를 하느님께로 돌이키시게 하려고 어떤 세련된 말,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고, 누가 나에게 찾아와서도 아니고 그냥 우리나라 성도들이 모여서 나라와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찬양하는데 거기서 예배가 진실하게 드려지니까 그걸 통해서 저에게 임재해 주시는 거예요.” 
 
왜 공동체가 사람을 바꿔놓을까요? 양심을 작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혼자 있을 때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그리스도 공동체에 속하면 엄청난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변하고 싶은 사람은 변화된 공동체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깨어있음입니다.
이 깨어있을 줄 아는 사람들을 보시고 주님은 함께 머무시는 은총을 주십니다.  
 
깨어있음과 반대로 잠은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꿈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은 바로 자신의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였습니다. 
무의식이란 바로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나타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잠에 빠졌을 때 양심이 작동하지 않아 욕망이 활개를 쳐서 그런 꿈들이 제어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몸이 아프다고 하며 프로이트를 찾아왔습니다.
프로이트는 몸의 증상도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몸이 아픈 이유를 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꿈은 무의식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통로로 보았습니다.  
 
그녀가 자주 꾸는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녀가 조카가 죽어서 장례식에 있었는데 그녀는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심지어 기분이 좋은 마음마저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조카가 죽었는데 기분이 좋다는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비슷한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언니의 남편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그러한 관계를 언니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녀는 형부와의 관계를 청산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죽게 된 것입니다. 
언니가 죽으니 다시 형부와의 관계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서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일입니다. 
 
프로이트는 원초적 욕망을 ‘원초아’(Id)라 하였고, 이 욕망을 제어하는 양심과 같은 기재를
‘초자아’(Super-ego)라 불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엔 원초아밖에 없습니다. 원초적 본능만 살아있는 것입니다.
자아는 초자아보다 더 먼저 형성되는데 젖을 먹고 싶은데 숟가락이 입에 들어올 때 생겨납니다.
자신의 욕망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아가 생기는 것입니다. 
 
초자아는 부모님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 배변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세상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양심은 사회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더 활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원초아 – 자아 – 초자아는 가정에서 사회성이 형성되면서 함께 발달한 것이기에 덜 사회적일수록 더 원초적인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사회적일 때 더 윤리적 인간이 됩니다.  
 
요즘 가정이 많이 분해되고 있습니다.
명절은 특별히 가족이 왜 한 데 모여서 친교를 나누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가족은 바로 우리가 생존 본능에서 양심에 통제받는 사람이 되는 성장을 처음으로 이룩한 공동체입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이때는 우리가 왜 교회 공동체에서 형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현명한 처녀, 미련한 처녀 내용에서 미련한 처녀들은 현명한 처녀들 안으로 들어올 줄 몰랐습니다.
현명한 처녀 무리로 들어왔다면 그들이 하는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얻어지는 성령의 기름으로 죄에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다섯이라는 육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섯이라는 성령으로 육체를 이긴 이들 무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원초아를 눌러줄 초자아는 반드시 공동체와 함께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특징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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