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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31 조회수 : 1489
1월31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마르코 5,1-20 
 
악령보다 무서운 것이 자아임을 모를 때 벌어지는 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서 군대라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당시 로마 한 군단은 6천 명이었으니,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악령이 들어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들어가서 물에 빠져 죽은 돼지들만 2천 마리가 넘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리스도 덕분으로 마귀 군단의 압제에서 벗어난 사람은 온전한 모습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며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부하십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가리옷 유다와 같은 인물은 받아주시면서 이제 악령으로부터 깨끗해진 이는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악령에서 해방되면 성인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너무 쉽습니다.  
 
저도 군대에서 죽은 귀신을 보는 군인에게 “그냥 안 보이는 척 하세요”라고 했더니 사흘 만에 그 귀신이 보이지 않게 된 일이 있습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악령이 그냥 나가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이렇듯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더 무서운 것이 있음을 잊고 악령을 더 무서워합니다. 
게라사 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악령이 들린 사람을 휘어잡기 위해 쇠사슬과 족쇄를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들린 사람은 그것들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게라사인들은 자신들 안에 그 악령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바로 ‘자아’입니다.  
 
게라사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인 돼지 2천 마리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떠나가 달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악령에서 해방된 이는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예수님을 밀어냅니다. 
 
예수님은 악령에 대해서는 그 숫자에 상관없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시지만 자아가 자아내는 탐욕, 성욕, 명예욕에 대해서는 아무 힘도 없으십니다. 
그냥 조용히 떠나십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무서운 자아가 우리 안에 있음을 잊는다는 것은 곧 악령이 걸려있는 사람보다 위험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포스터에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섬뜩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
‘파수꾼’(2011)입니다. 과연 학교 일진의 친구들은 행복할까요? 
 
기태, 희준, 동윤은 절친한 친구입니다. 
기태은 여자친구 세 명과 함께 월미도에서 미팅을 주선합니다.
희준이 관심 있는 보경은 기태에게 관심을 보이고 기태는 희준을 생각해 고백을 거절합니다.
보경이 기태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본 희준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까지 빼앗는다고 기태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됩니다.  
 
 
기태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 일진이고 그런 기태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무척 예민한 부분이었습니다.
희준은 기태가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과민반응한다는 말을 흘리게 되고, 기태도 희준에게 망을 보라고 시키는 등 자존심에 상처를 입힙니다.  
 
이를 계기로 둘의 사이는 본격적으로 나빠집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동윤은 희준을 보고 이상함을 느낍니다. 
기태는 희준을 가방까지 빼앗아가고 가방을 찾으러 온 희준의 뺨을 때리는 등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농락합니다.  
 
동윤은 기태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합니다. 기태는 마음을 바꾸어 다음날 사과하러 희준에게 다가갑니다.
기태는 이제 그만하자고 사과하는데, 희준은 너무 큰 상처를 받았기에 사과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전학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이미지로 남기를 원했는지
기태는 전학하는 희준에게 셋의 우정과 추억이 담긴 야구공을 건네며 작별인사를 합니다.  
 
희준이 전학 간 뒤 기태의 폭주는 계속됩니다. 이에 동윤은 기태를 말려보려 또 충고합니다.
기태도 이번에는 동윤의 여자친구 세정이가 건전하지 못하다며 동윤에게 충고하며 그런 충고가 얼마나 마음 아픈 것인지 알려줍니다.
세정이를 만난 동윤은 표정 관리를 못하고 헤어지자고 합니다.
이에 세정은 자신의 소문으로 인해 상처받고 자해를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갑니다.  
 
이에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고 그 소문에 있어서 자신이 그 소문을 알고 있는 것을 세정이에게 말했느냐고 따집니다.
기태는 그런 오해를 하느냐며 어이없어합니다. 이에 동윤이 기태에게 먼저 폭력을 가합니다.
기태와 한 패거리들이 동윤을 둘러싸 때렸고, 기태가 일어나 그들을 말리며 동윤에게 그건 오해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윤이 학교에 나오지 않자 기태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동윤의 집에 찾아갑니다.
동윤은 기태에게 그냥 가라고 말합니다. 
기태는 이제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친구 동윤에게 한 번 더 진심 어린 사과를 합니다.
동윤은 이렇게 비수가 꽂히는 말을 합니다.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 줄 사람은 나뿐이라고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 줄 알아?
네가 역겨우니까 네 주변 애들이 다 너 떠나는 거야.”
“그래? 그게 내 모습이야?”
“어!”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떠나가자 기태는 자살하게 되고 결국 동윤은 그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청소년의 성장 이야깃거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일 수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까지 자신이 힘이 세다는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친구들에게는 역겹게 보인다는 사실을 누구도 기태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입니다.  
 
기태는 항상 “이만큼 머리 숙이고 사과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자기 주도적인 관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힘과 권력, 명예나 교만함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음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입니다.
진정한 적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태는 원인도 모른 채 그냥 자신이 죽어야 마땅한 존재라 믿게 된 것입니다.
기태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게라사인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얼 포인트’(2004)는 베트남 전쟁 당시 군인들이 귀신과 싸우는 내용입니다.
사실 귀신과 싸우기보다는 자신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 더 옳은 이야기입니다.
귀신을 보느라 자신 안의 두려움을 보지 못한 이들은 다 죽어갑니다.
귀신은 결국 우리 안의 자아와 결탁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를 이기는 자는 귀신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꼭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우리 안에 있는 자아가, 그리고 그 자아가 만들어내는 삼구라는 욕구가 마귀에 들리는 것보다 더 무서움을 자녀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마귀는 쫓아낼 줄 알면서 그것보다 더 무서운 자아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귀는, 그것이 군단으로 있을지라도, 한 마디로 쫓아낼 수 있으셨지만 게라사인들의 탐욕에는 아무 힘도 쓰실 수 없으셨음을 잊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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