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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22 조회수 : 1430
1월22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마르코 3,20-21
 
미친 세상에서 정상인 게 정상인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자 그분의 친척들은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붙잡으러 나섭니다.
예수님의 삶이 분명히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지 예수님이 걱정되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게 좋은 일일까요,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게 좋은 일일까요?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하느님께는 역겨운 일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입니다. 세상과 싸우신 분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주적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유럽의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색출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로 보내는데 나름대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패전 후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살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됩니다.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과정을 정리하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때 15개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지만, 그는 단 하나의 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급 공무원으로서 출세를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한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공무원으로서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최대한 열심히 수행한 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 판결을 받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악한 시스템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죄’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사람은 항상 어떤 시스템 안에 속해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악한 시스템인지 선한 시스템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은 것인 양 열심히 적응하며 살았다면 사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원이 어떤 배에서 평생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엔 경찰에 잡혀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 배가 해적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해적선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자아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 해적선에 탄 사람이고, 그 자아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도 커다란 해적선입니다. 
우리가 해적 선단에서 잘 적응했다고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세상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나가야 합니다. 
나치 시대 때도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가 그런 사람이었고, 669명의 어린이를 구한 ‘니콜라스 윈턴경’이 그러한 분입니다.
 
2007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폴란드 여성 ‘이레나 센들러’도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센들러는 1942년 전쟁 때 유대인 구조대인 제고타(Zegota)의 일원이 되어 약 2,500여 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구했습니다.
1943년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발이 부러질 정도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센들러는 함께 일한 동료들의 이름과 그녀가 구한 아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야누스 코르착’은 자신이 키우던 유대인 고아 192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당당히 걸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가스실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는 정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 정상인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나치 시대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그때는 조금 더 지나쳤을 뿐이지만 실상 그들이 추구하던 것이나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돈과 쾌락과 힘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마더 데레사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이 세상에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조금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그런 미침이 세상을 따듯하게 합니다. 
서울대학교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올라온 어떤 한 학생의 사연입니다. 
 
“저는 정말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식당일을 하시는 엄마와 둘이서 6평 정도 되는 반지하 방에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엄마는 하루 열 시간 넘게 일을 하시면서 생활비를 버셨어요.
 
수시를 지원할 때가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비싼 원서비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두 곳의 대학만 지원했어요. 
당장 집에 원서비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 사정을 대충 아시는 담임 선생님이 주신 10만 원으로 두 곳의 대학을 지원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어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좋아하셨고, 차비로 5만 원을 마련해주셨어요. 
엄마는 안타깝게도 바쁜 식당일 때문에 따라올 수 없었어요.
 
저는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버스표를 왕복으로 끊고, 남은 돈 만 오천 원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아침 면접이었기 때문에, 전날 오후에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대 입구로 가서, 찜질방에서 자고
학교로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난생처음 서울에 도착했는데, 돈이 없어졌어요.
가방을 뒤져보고 주머니를 한 시간씩 털어봐도 돈이 안 보였어요. 
 
저는 대합실에 앉아서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걷기 시작했어요.
터미널에서 서울대로 걸어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어보니깐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대충 알려주신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한 2~3시간쯤 걸었을까, 너무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힘들었어요.
저는 갑자기 너무 무섭고 서러운 마음에, 길에 앉아 펑펑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면접을 보러 못 갈 것만 같았어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어딘지도 모를 아파트 앞 벤치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다가왔어요.
아저씨는 제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주었고, 저는 제 사정을 겨우겨우 말했어요.
아저씨는 놀라시면서, 저를 숙직실로 데려다주셨어요. 라면을 끓여주시면서, 자기는 하루 정도 좀 못 자도 괜찮으니까,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퇴근하시면서 저를 태워주겠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차에서 셔츠를 벗어 주시면서 옷이 너무 촌스럽다고 이거를 입고 가라고 했고, 저는 죄송해서 못 받는다고 하니깐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면서 나중에 대학에 붙고 옷을 갖다 주러 오라고 하셨고, 터미널까지 갈 때 차비로 하라고 만 원을 주셨어요.
 
저는 그 아저씨 덕에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합격자발표가 나고, 제일 먼저 엄마 식당에 전화했고, 그다음엔 그 아저씨한테 전화를 드렸어요. 
아저씨는 자기 일처럼 너무 행복해하시고, 나중에 올라와서 밥 한 끼 먹자고 하셨어요.
 
서울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고, 과외랑 아르바이트도 한계가 있었어요.
악착같이 50만 원을 모은 저는, 첫 학기가 끝난 날 눈여겨보았던 양복을 샀어요.
7개월 만에 아저씨를 만나서 멋진 양복을 전해드렸어요. 셔츠는 돌려드렸지만, 그 셔츠에 맞는 멋진 양복도 꼭 드리고 싶었어요.
 
다행히도 아저씨는 계속해서 거절하셨지만, 결국엔 정말 좋아해 주셨어요.
태어나서 가장 큰돈을 쓴 날이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행복했어요.” 
[출처: ‘가난한 서울대생이 경비아저씨에게 양복을 선물한 이유’, 유튜브, ‘오늘의 영상툰’]
 
이런 삶이 이 세상에서 미친 삶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을 거스르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침몰해가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배에 적응하고 정상이라고 인정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주적입니다. 
세상은 자아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친척들에게까지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음을 기억합시다.
그게 정상적인 신앙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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