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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16 조회수 : 1340
1월16일 [연중 제2주일]
 
요한 2,1-11
 
자녀에게 사랑받는 법: 어머니는 자녀에게 물을 줄 수도 있고 포도주를 줄 수도 있다.
 
오늘 복음은 ‘카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여기에서 진짜 주인공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을 끌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성모님의 말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기적을 하시게 만드십니다. 
 
잠시 저를 성모 마리아라 비유하자면 여러분은 누구이실까요?
바로 저의 글이나 동영상을 퍼서 날라주는 봉사자들입니다.
사랑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흐르는 것을 받아서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예수님으로부터 포도주를 얻어내야 할까요? 성모님은 예수님을 ‘한 없이 좋은 남편’으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대표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부인’이란 의미의 “여인이시여!”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성모님이 어머니셨지만 이제 아버지의 아드님 위치에 선다면 성모님은 다시 교회의 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가장 사랑받는 신부로서 신부가 신랑에게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낼
자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성모님이 왜 우리에게 공경을 받으실까요?
성모님이 예수님께 포도주를 얻어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물만 마셔야 합니다.
물은 사랑이 빠진 음식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음식에 사랑이 더해지면 양식이 됩니다.
자녀는 양식을 먹어야 온전히 성장합니다. 
음식만 먹으면 여전히 동물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모님은 이것을 알기에 사랑의 주인이신 신랑에게 당신의 ‘피’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징이 레베카가 이사악에게 야곱의 축복을 얻어내는 장면입니다.
레베카는 사실 이사악의 모든 축복을 받을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악의 축복을 야곱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도 에사우가 레베카에게 해꼬지를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머니이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야곱도 사랑해서 그런 일을 벌인 것입니다. 
 
원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의심’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그들은 하느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자녀들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얻어서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의심하지 않으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에덴동산의 그 많은 은총을 보며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성모님은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반대하시는데도 레베카처럼 우리 교회를 위해 은총의 중재를 감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교회에서 공경받는 이유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아드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불완전했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물만 마실 것이고
우리 동물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렇게 해주지 못한 어머니인 성모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의 마리아는 사제이고, 가정에서의 마리아는 어머니입니다.
사제가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고 평소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면 신자들에게 사랑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주는 것들은 양식이 되지 못하고 음식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기대한 것을 받지 못한 신자들은 사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동물의 본성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이 되고 싶어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자녀에게 잘하려 해도 자녀에게 원망만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자녀가 그냥 어머니이니까 억지로 존중하는 척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 어머니가 자초한 일입니다.
 
자녀 앞에서 아버지의 자비를 믿지 못하게 하여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처럼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는 자녀에게도 절대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물은 줄 수 있지만, 포도주는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미움을 받는 어머니는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를 닮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74회에 이유 없이 엄마를 싫어하는 딸 한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는데 딸은 핸드폰에 엄마 전화번호도 없습니다.
딸의 가장 큰 위로자는 할머니입니다. 엄마가 밥해주는 것은 맛이 없다고 하고 엄마만 나가면 할머니와 아빠 편을 들면서 엄마를 이유 없이 미워합니다. 
이유라도 알면 좋겠지만 이유가 없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이가 지금 힘이 강한 할머니와 아버지 쪽에 붙은 것이라고 해석해줍니다. 
과연 그럴까요? 엄마가 주는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빠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딸이 엄마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레스토랑에 가서 포도주를 시키고 기다렸는데 물만 나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화가 날 것입니다. 
한별이는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남편이 나와서 지금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자신은 무시만 당한다고 말해도 전문가는 아내도 힘들다고만 할 뿐입니다.
물론 아내의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남편 말도 귀담아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데 제가 느끼는 가장 큰 핵심은 뭐냐면 (아내가 나에게) 공감을 못 해줘서 이 사람이 싫은 건 아니지만
14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함께하며 감정 교류가 안 된다는 게 생각보다 매우 힘들더라고요.
혼자 있어서 외로운 건 당연한 건데, 같이 있는데도 외롭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제가 많이 힘든 일 있을 때도 전혀 공감을 안 해주고 나는 죽겠는데 옆에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남 이야기처럼 말합니다.
내가 좋은 일이 있어서 집에서 함께 기뻐하고 싶은데 대답한 한결같은 무덤덤함이었습니다.
이걸 한별이가 똑같이 엄마에게 하거든요. 
한별이도 ‘엄마 나 좀 사랑해줘’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전문가는 엄마 또한 남편이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남편의 감정을 무시하는 듯한 엄마의 문제는 실제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해주는 조언들이 항상 실패하기 때문에 아내도 남편에게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내는 항상 성모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빠의 피땀과 엄마의 피땀이 다 섞인
‘포도주’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아내도 이 노력을 해야만 자녀에게 사랑받습니다.
혼자 자녀를 위해 하는 노력은 포도주를 기대하는 손님에게 물만 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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