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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11 조회수 : 1038
1월11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마르코 1,21ㄴ-28
 
한 번은 하느님처럼 되어야 악령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초기에 어떠한 권위로 가르침을 이어가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악령 들린 사람이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라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자기를 들어 높이는 행위이고 그리스도를 자신과 한편이라고 말하며 그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하시며 악령을 당신 권위로 누르십니다.
사람들을 이것을 보고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마르 1,27)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악령에 대한 권위가 없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악령을 장난감 다루듯이 하십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할까요?
당연히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성령의 힘을 지니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악령도 하나의 영이기에 영은 영에만 반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은 원죄로 성령을 거부하였기에 쉽사리 악령의 노예가 됩니다.
 
악령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전능한 하느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먼저 전능해지지 않으면 교만으로 유혹하는 악령 앞에서 언제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알았던 걸 그때 알았더라면』의 저자 ‘이시이 마레히사’에게 웹 디자이너 ‘도츠’라는 남성이 상담하러 찾아왔습니다.
동거 중인 여자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쿠라이’라고 부르는 그 친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인데 도츠는 그녀가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집에 있으며 그녀를 맞이해야 한다고 합니다.
도츠는 집을 사무실로 사용하기에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이 있어 자신이 들어왔을 때 남자친구가 없으면 사쿠라이는 견딜 수 없어 하고 끊임없이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도츠를 범죄자 취급하며 심하게 몰아세웁니다.
도츠는 사쿠라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몇 시간이나 사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도츠가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또 전화가 울렸고 그래서 받지 않았습니다.
계속 전화가 울려서 전화기를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회의실 사무직 여직원이 회의실에 들어오더니
“저기…. 혹시 도츠씨 계신가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츠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여자친구가 사무실로 몇 번이나 전화해서
바꿔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츠는 어쩔 수 없이 전화해야 했고 흥분하여 막무가내인 그녀 때문에 회의를 중단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로 도츠는 회사에서도 조금씩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도츠의 노력으로 사쿠라이가 변할 수 있을까요? 사쿠라이는 왜 도츠를 ‘지배’하려 드는 것일까요?
도츠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쿠라이의 도츠를 통제하려는 마음은 바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쿠라이의 문제는 도츠가 아닌 자신의 어릴 적 상처 때문입니다. 
 
사쿠라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관찰하는 여름방학 숙제를 위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와 동물원에 가기로 된 날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사쿠라이에게 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로 “잠깐만 기다려. 꼭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집을 나가고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쿠라이는 집을 나간 아버지가 계속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쿠라이는 이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내가 숙제를 함께 하자고 하도 부탁해서 아버지가 그게 싫어서 집을 나가신 거야!”
몇 년 동안 후회와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여자가 이었고 그날 그 여자와 도망치기 위해 떠났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듣고는 이젠 자책이 원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제일 의지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기에 아버지도 싫고 그렇게 버려지는 존재인 자신은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도 자신을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그렇게 병처럼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악령은 이렇게 사랑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쉽게 스며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육체와 정신과 심지어 마음마저 점령해버립니다.
그러면 결국엔 마귀 들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령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쿠라이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넘어서야 합니다.
아버지보다 전능해져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부모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공부도, 힘도, 키도, 사랑하는 마음도 부모를 넘어서면 그 아이는 비로소 ‘겸손’의 길로 갑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부모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관계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넘어서서 전능한 존재가 되어보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성장해서도 끊임없이 일단은 부모를 넘어서려 합니다.
한 번은 전능해져야 합니다.
그러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결국 악령의 힘까지 빌리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는 먼저 하느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교만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하느님처럼 전능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악령에 휘둘리는 약한 존재로 머물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CCC, 460 참조).
아담과 하와가 먼저 하느님처럼 되었다면 ‘하느님처럼’ 만들어주겠다던 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악령이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말할 때,
마치 자신이 그렇게 고백해 주어서 예수님이 이득을 보는 것처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덕이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음을 알기에 더는 악령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악령을 밟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를 넘어섰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하느님이 되려고 합니다.
자아의 욕심은 완전히 하느님처럼 되지 않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처럼 전능해지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전능해지지 않으면 전능해지라는 사탄의 목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처럼 되었다고 믿지 못할 때, 사탄은 돈과 쾌락과 명예로 하느님처럼 만들어주겠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어 이미 하느님이 되었다고 믿는 이에게는 그 유혹이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만이 악령을 이기는 가르침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이미 하느님처럼 되었음을 믿는 이는 그 모든 것이 주님 덕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오로주 주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한 가르침을 줍니다.
그 가르침으로 사탄은 힘을 잃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처럼 성령으로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얻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하느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체를 영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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