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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07 조회수 : 1257
1월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루카 5,12-16
 
하느님은 왜 엎드려 청할 때까지 들어주시지 않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나병 환자는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칫 이 말은 “하고자 하면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던 겁니까?”
라는 원망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적을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겸손하게 청할 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알아서 다 해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만약 나병 환자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청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기적을 행해주셨을까요?
아마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우리 겸손을 위해 더 좋다면 예수님은 기적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목적을 명확히 알아야 우리도 그분께 좋은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겸손’은 관계의 기본입니다. 
교만하면 판단하게 되고 판단하면 관계는 끝납니다.
판단을 안 하는 습관을 기르려면 자기 판단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를 겸손한 아이로 자라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은 오만과 편견이 관계의 적이고 그 오만과 편견은 진정한 사랑으로만 녹아내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엘리사벳은 매우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입니다.
사람을 첫인상, 사교성, 가치관, 사용하는 언어와 제스처 등으로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압니다.
그리고 그런 엘리사벳에게 가장 안 좋게 판단을 받는 남자가 재벌이자 미남인 다아시입니다.
다아시는 돈도 많고 무표정하고 사교성 없고 거만하게 사람을 깔보는 듯한 오만한 인물입니다. 
 
엘리사벳에게 극도로 오만하다고 판단 받은 다아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닷없이 청혼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안을 부잣집 남자들을 꾀는 여자들이라고 여기는 듯한 다아시의 청혼을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남들보다 두 배나 빠르게 글을 쓸 줄 아는 다아시가 온종일 정성 들여 쓴 두 장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습니다. 
 
영화 내내 엘리사벳의 눈으로 다아시를 보아서 그가 오만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 있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오만하다는 편견으로 남을 판단하고 있었던 자신이 진짜 오만한 사람임을 깨닫고 겸손해져서 항상 솔직해서 문제였던 다아시를 받아들입니다. 
 
자녀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금쪽같은 내 새끼 80회’에서 “엄마 꺼져!”라고 외치는 게임에 중독돼 난폭해진 쌍둥이 형제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었다는 뜻은 현실이 행복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엄마가 아이들을 너무 ‘통제’하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매를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여서 그렇다고 하지만 잔소리와 체벌이 난무합니다. 
 
아이를 겸손하게 하는 법은 부모가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고 자존감을 잃습니다.
 
자존감을 잃으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면 자기 자랑을 하게 되지 부모 자랑을 하게 되지 않습니다.
부모를 바보로 여깁니다. 
부모는 아이를 겸손하게 하려고 최대한 스스로 하게 하고 청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주거나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키우려고 하다 보면 아이는 통제받고 자존감을 잃고 교만해집니다. 
 
어느 만둣가게 주인이 제때 따듯한 식사를 하지 못하는 환경미화원과 부랑자들에게 ‘사랑의 만두’를 공짜로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선행을 계속하다가 주인이 만두를 더는 공짜로 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그간 만두를 얻어먹던 사람들이 거칠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만두 말고 돈으로 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른바 착하고 순진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자랑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해지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알아서 다해주면 인간이 하느님을 바보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주다 안 해주면 오히려 짜증을 냅니다. 
하느님께서 알아서 다해주시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당신을 신뢰하여 겸손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조건 해주면 저절로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바치라는 것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다해주거나 혹은 아무것도 안 해주거나 다 문제입니다. 항상 기다리며 청할 때 해주려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당신께 청할 때까지 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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