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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03 조회수 : 1220

예수님 만나는 법: 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역에서 첫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당시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멀어질수록 이방 민족에 가깝고 어둠과 오류 속에서 산다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가졌건, 가지지 않았건 자신이 더 오류 속에 산다고 여기는 사람이 빛을 보는 것입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지역 사람보다 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여겨 교만하여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빛이시기에 자신이 빛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다가가시지 않습니다. 

 

어느 날, 원효대사가 외출했다가 분황사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떤 노스님이 길을 가로막더니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갑구려, 원효대사. 대사께서 쓴 글을 읽어보았는데 깊이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보잘것없는 글인데 송구스럽습니다.”

“대사!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저랑 같이 식사라도 하시지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 스님은 원효대사를 데리고 천민이 사는 동네로 향했습니다.

솔직히 원효대사는 그때까지 천민이 사는 동네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화랑이었을 때는 당연히 갈 이유가 없었고, 출가해 스님이 된 뒤로는 공부하느라 갈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노스님은 어느 주막집에 이르러 자리를 딱 잡고 앉더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어이, 주모! 여기 귀한 손님 오셨으니 술상 하나 봐주게.”

그 순간 원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수행하는 사람이 술상이라니!’

원효대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 나와버렸습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버렸습니다. 이때 갑자기 그 스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효대사, 마땅히 구제해야 할 중생이 지금 여기 있거늘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원효대사는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빛이라고 생각하면서 빛은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있을 곳은 어둠입니다. 그래야 참 빛이 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원효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노스님은 이론에만 머물던 자신의 자가당착을 밝혀주는 작은 빛이었던 것입니다. 

 

원효는 승려들을 가르치던 스승 역할을 그만두었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대신, 머리를 기르고 신분을 숨긴 채 어느 절에 들어가 부목(負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목 생활이란 사찰에서 땔나무를 마련하는 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젊은 승려들에게 무시당하며 땔나무를 구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그 절에 꼽추 스님이 있었는데 다들 그 스님을 ‘방울 스님’이라 불렀습니다.

걸식할 때 아무 말 없이 방울만 흔들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방울 스님은 공양 때가 되면 다른 스님들처럼 제때 와서 밥을 먹지 않고 꼭 설거지가 다 끝난 뒤에 부엌을 찾아와

남은 누룽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목들은 그 스님을 귀찮아하고 무시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원효 스님이 마루를 닦다가 학승(學僧)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보아하니 ‘대승기신론’을 공부하면서 논쟁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효가 그 논쟁을 들어보니 학승들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효는 자신도 모르게 “그건 이런 뜻입니다”라고 말하며 일깨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일개 부목 주제에 어디 스님들 공부하는 데 와서 이러니저러니 아는 체를 하는 게냐?”

그제야 원효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다시 일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공부 판이 깨진 스님들은 스승을 찾아가 ‘대승기신론’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를 건네주며 공부해보라고 말했습니다.

학승들이 그 책을 읽어보니 깊이가 있음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책에 나와 있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 원효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원효는 신분이 들통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에 조용히 그 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스님이 잠든 시각 원효는 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문간방에 있던 방울 스님이 방문을 탁 열고는 이렇게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원효, 잘 가시게.”

방울 스님의 이 한 마디에 원효는 그 자리에서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천민들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들 가운데로 내려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가장 핍박받는 스님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빛은 어둠을 향해야 하고, 더 나아가 어둠만이 빛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출처: ‘인생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 유튜브, ‘북올림’]

 

이태석 신부님이 가난한 톤즈라는 마을 한센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마더 데레사는 목마르다고 외치는 한 노숙인에게서, 그리고 김하종 신부는 한 냄새나는 지하 방에 사는 사람을 끌어안을 때 “나다. 두려워 마라”라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저는 신학교 들어오기 전 떠들며 술 마시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 그 고요함 가운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문득 느껴서 수도원에 가 있는 친구에게 “화장실에서 만난 하느님”이란 글을 편지로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빛이시다면 그분은 어둠 속에 계십니다. 별이 낮에 뜨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둠이라고 여겨지던 갈릴래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둠만이 빛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고, 내가 알고, 내가 잘살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절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너무 밝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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