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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01 조회수 : 1118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나라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기도 하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 첫날 우리나라의 수호자이신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고백하며 공경하는 대축일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좋고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목자들을 부른 천사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나 세례자 요한을 의미합니다. 
목자들이 그 부르심으로 마구간에 들어왔을 때 아기 예수님을 먼저 경배했을까요, 아니면 성모 마리아의 허락을 받아야 했을까요?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드님으로서 어찌 당신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싶으시겠습니까? 
 
언어를 배우지 않고는 외국인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소통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언어와 같습니다. 
어떤 언어든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면 굳이 성모님을 선택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언어는 길과 같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내어놓으신 길을 그대로 걷지 않으면 그분께 갈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두 번째 길이고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위해 마련하신 당신과 가장 밀접한 길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면 우리도 당신께 다가오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게 내신 길을 따르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길로 오려고 한다면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도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 ‘하.사.시.’나 ‘십일조’, 그리고 ‘7기도’나 ‘성체조배’ 등이 큰 역할을 했음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하지만 만약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저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물론 그런 사람을 물리치는 일은 없겠지만, 저를 만든 이런 것을 무시한다면 아무래도 저도 그 사람에게
심리적 거리를 둘 것입니다. 
저를 사제나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다가오려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런 것들이 하나의 언어입니다. 하.사.시.를 읽은 사람과 말이 잘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 집에 몰래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주인이 원하는 길과 문으로 그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있음을 발견한다면 주인은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다다르는 가장 합법적인 길, 혹은 문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할 때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 아드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EBS 스페셜 프로젝트 ‘아빠 찾아 3만리’에서 아빠를 찾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단둘이 날아온 자매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아직 어린 자매는 공책에 필요한 말들을 적어왔지만, 한국인에게 길을 묻는 것이 두려워 계속 길을 헤매다 결국엔 울어버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용기를 내어 공책에 적힌 것을 보여주며 인천 공항에서 아빠가 일하는 대구의 공장까지 찾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다가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성모 마리아를 거쳐야 합니다.
그 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언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해 그 소통의 방법인 언어를 더 열심히 배우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첫 번째 언어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오신 통로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우리가 다시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배워야 하는 언어가 있다면 성모 마리아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감히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러분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 그려보세요.”
 
반 아이들은 가족, 동물, 자연 등 각자가 원하는 것을 도화지에 그렸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아이는 도화지를 온통 검게 칠했습니다. 선생님들도 부모들도 아이가 무엇을 그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수십 장의 도화지를 그저 빈틈없이 검게 칠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의사들에게도 무엇을 그리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릴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계속 도화지에 검게 칠했습니다.
이제 수백 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의 책상에서 커다란 고래의 그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다 맞춰보니 커다란 고래의 모양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그저 고래를 고래의 크기에 맞춰 그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온전한 크기의 고래 그림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한다면 그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이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였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리스도께 간다는 말도 역시 그리스도를 어쩌면 “왜, 굳이 마리아에게 태어나셨어요?”라고 이해 못 하며 다가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계명 판이라면 성모님은 그 판을 담고 있는 계약의 궤입니다.
먼저 계약의 궤를 만나지 않으면 그 속의 십계명 판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모든 자녀의 나라는 어머니인 것처럼, 성모님도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고 싶다면 그분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성모 마리아와 먼저 소통해야 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사용하시는 언어와 같기 때문이고, 당신께 오는 길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 그분께서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끄시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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