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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28 조회수 : 1199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 다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문제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로데에게 대신 죽은 순교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헤로데는 그때 아기 예수님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위해 희생된 어린 영혼들은 교회에서 순교자 지위에 오릅니다. 
 
제일 문제 되는 것은 아기들이 자기 의지로 순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경받을 만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만약 내가 산길을 차를 몰고 가다가 웅덩이를 피하려고 차를 비트는 바람에 길가에 있던 어미 새를 치어 죽였습니다.
내려보니 둥지에 새끼 새들이 있습니다. 
어미가 없으니 이들은 다른 동물들에 잡아먹힐 것이 확실합니다.
이때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 새끼 새들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어야 했고 그들의 영혼을 주님께서 책임져주셔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만약 어미 새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 독사는 새끼들도 잡아먹을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있는 하느님께서는 사랑도 있고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러니 당신 아드님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당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 죽음이 누구를 위한 죽음이어야 그 보상을 받게 되는지 잘 깨닫게 해줍니다.
나에게 사랑을 지닌 분이시고 그 보답을 해줄 능력을 지니신 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 내 죽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 대신 죽어주고 싶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여러분 방 안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사 놓은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매트릭스’(1999)란 영화에서 네오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 밤에는 해커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에게 모피어스란 자가 나타나 빨간 약과 파란 약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합니다.
파란 약을 먹으면 그냥 이전처럼 침대에서 깨어나겠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리란 것입니다.
 
네오는 진리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빨간약을 먹습니다.
그랬더니 눈을 떴을 때 믿지 못할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세계는 기계에 의해 프로그램된 조작된 세상이었고, 기계들이 인간들이 그렇게 허상의 세계에서 사는 동안 인간을 빨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오는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아라는 기계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기계의 세력과 맞서 싸웁니다. 
 
나를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착각입니다. 
우리는 누구든 모두 누군가를 위해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과연 나의 생명을 바치는 값을 되돌려줄 대상인지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자아는 나를 이용할 뿐 나에게 자신을 위해 일한 값을 쳐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내 죽음의 값을 되돌려줄 수 있는 분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분이란 나를 만드신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딸이 무덤에서 외롭지 않도록 무덤 속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국 아빠의 사연이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 사는 장 리용씨와 딸 신레이의 사연입니다.
 
리용씨 딸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지중해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중해빈혈’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중증의 경우 적극적인 수혈 요법이 필요하고, 15세가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리용씨는 가난한 농사꾼이었지만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가며 딸의 비싼 치료비를 감당해 왔습니다.
그간 치료비로만 10만 위안(약 1680만원)을 사용했지만, 딸의 병세에는 차도가 없었습니다.
리용씨 부부는 의사에게 “제대혈(탯줄혈액) 이식을 통해 딸을 살릴 수 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 둘째 아이를 뱄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싼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모든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엄마 뎅민 씨는 “우리에겐 이제 어떠한 선택도 남아 있지 않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부부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용씨는 딸의 묏자리를 알아보고 직접 무덤을 팠습니다. 
이후 리용씨는 딸과 함께 이곳을 매일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딸이 죽은 후에도 이 장소를 무서워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무덤 속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리용씨는 “궁지에 몰린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다”라며 “2살 딸아이가 묻힐 이곳에 데려와 같이 놀면서 익숙해지게 하는 일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매일 같이 딸과 함께 이곳을 동행하는 것”이라며 “딸이 무덤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죽는 순간이 다가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리용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은 피어 비디오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에서 퍼졌고 사연을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신레이의 치료비를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딸의 병이 낫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녀가 죽을 때 그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 무덤에 함께 들어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는 마음을 지닙니다. 
그 마음을 지니신 분이 하느님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누구나 누구를 위한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나라를 위한 죽음일 수도 있고, 내가 믿는 신조를 위한 죽음을 수도 있으며, 가족을 위한 죽음일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한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 목숨을 바치는 대상이 나에 대한 사랑도 없고, 비록 사랑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보답할 능력이 없는 대상이라면 나의 삶과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세상에 나의 죽음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삶으로 되돌려줄 사랑과 능력이 있는 분이 하느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심장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심장을 하느님을 위해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은 혀와 성대가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주님 말씀을 전하는 데 썼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오른손과 발이 썩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선교하기 위해 그것들을 희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온몸이 썩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의 심장에 받아들여
온몸이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찮은 새 한 마리를 어쩔 수 없이 죽였어도 그 새끼들에게라도 보답을 해준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나의 목숨을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해 볼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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