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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4 조회수 : 1347

동방의 별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역할에 대해 말씀을 이어가시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세례자 요한을 믿어서 하느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가는 세리와 창녀들을 보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오늘 비유 말씀에서 맏이는 포도밭에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처음엔 반대했지만, 나중엔 갔고 다른 아들은 처음엔 가겠다고 했지만, 나중엔 가지 않았습니다. 
왜 마음이 바뀐 것일까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묵상’을 한 것이고 한 사람은 그저 자아와의 대화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맏이는 그동안 아버지께서 해주신 일들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묵상 기도를 했고, 가겠다고 했던 다른 아들은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말에 따를 필요가 없겠다는 불만족인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감사’뿐입니다.
왜냐하면, 한 인격체는 ‘뜻’으로 다가오는데 뜻을 받아들이려면 그 사람에게 고마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지 않으면 어떤 뜻도 따라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분께 감사가 나오게 하려면 의지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일기 쓰기’나 김희아 씨의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 찾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감옥까지 가는 인생에서 감사일기를 쓰면서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그리고 김희아 씨도 감사할 거리를 찾으려 해도 우리로서는 전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살려고 감사를 찾다 보니 자신을 버린 어머니까지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밖에도 여기저기, 감사로 수많은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난 사례도 허다합니다. 
 
감사가 없다면 예수님을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사실 매일 성체를 보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못 번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예수님께 마음으로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아무리 보려 해도 보지 못합니다.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은 것입니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납니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소.” 
그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 받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말합니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소?” 창녀는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소.”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는 그에게 묻습니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우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 만난 사람들일까요? 만나지 못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가 좋은 줄 알면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유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날 하늘의 두 천사가 각각 바구니를 하나씩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한 천사는 그리스도교 신자 중에 자기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를 거두어 바구니에 담고 또 다른 한 천사는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걷어 바구니에 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중 소원의 기도를 거두는 천사의 바구니에는 세상을 다 돌지 못했는데 벌써 차고 넘치는 것이나
찬송과 감사의 기도는 세상을 다 돌아서도 바구니에 차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사를 나중에 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자아는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무언가를 먹게 되면,
어떤 위치에 서게 되면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여기’에서 감사하지 못하면 감사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져도 하느님이 되지 않는 이상 불만족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쫓던 ‘별’은 무엇일까요?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감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선악과를 감사히 바치게 만드는 일입니다. 
생명 나무까지 가는 길에 감사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 감사의 방법이 선악과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봉헌인 십일조의 필요성을 말하는 ‘악한 포도밭 소작인들의 비유’가 오늘 복음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감사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나라에 가려고 하는 것은 별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만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하늘을 보고 감사해야 길을 잃지 않습니다.
모든 감사는 그리스도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뇌과학자 알렉스 코브(Alex Korb)는 감사와 뇌의 변화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뇌에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는 핵심부위인 전대상피질이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생각보다는 감정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생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보통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감사를 거치면 이후에 그것들이 기쁨과 사랑과 같은 감정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한 세무사 박점식 씨(64)는 근육위축증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일반 가장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 감사일기를 10개씩 쓰고는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녀와의 사이도 좋아졌고 직원들도 감사일기를 쓰게 하여 회사 분위기도 좋아졌고 능률도 향상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멈추지 않고 장모님께 감사한 것 100개를 적어 선물하였습니다.
그런 선물을 받는 장모는 얼마나 기쁘고 또 그런 선물을 하는 남편을 아내는 얼마나 사랑하겠습니까?
둘을 이어주는 다리는 어쨌거나 감사밖에 없습니다.
 
그는 책도 펴냈는데 어머니 살아생전에 1,000가지 감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쓰는 중 돌아가셔서 어머니 생전에는 마치지 못하고 관에 쓴 것까지만 넣어드렸는데, 99번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천 감사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 철학, 교육관, 가치관을 확인하지 못하고
영원히 묻어둘 뻔했습니다. 이것 역시도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얻게 된 감사 덕분이고 행운입니다.”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만났을 때 진정 만난 것입니다. 그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이 감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쫓는 별이 감사입니다. 그 감사를 일어나게 만드는 역할이 세례자 요한이고 교회입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감사의 봉헌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감사의 꼬리를 잡지 못하면 감사는 잡을 수 없습니다. 꼬리를 잡으면 머리도 딸려옵니다.
그러나 머리를 잡으려면 영원히 감사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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