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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0 조회수 : 1478

행복해지려면 지혜로운 자를 사랑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이어가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로 다가오는 통로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도 다 세례자 요한을 통해 온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신데, 삼구(세속-육신-마귀)를 벗어던지는 것이 행복임을 아는 ‘지혜’가 아니면 사랑의 실천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이 지혜를 전하는 역할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삶은 실로 거칠고 힘들어 보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돈을 좋아하는 마음, 쾌락을 좋아하는 마음, 교만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기 싫어하는 이들은 여러 핑계로 세례자 요한의 지혜를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합리화를 이렇게 합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마태 11,18)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지혜, 곧 회개의 세례를 받아들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마태 11,19)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세대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삼구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을 거쳐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 때문에 변하기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과 머물러야 합니다.

사람의 변화는 이야기를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변화된 사람과 머무를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물 위를 걷는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라면 어떨까요?

‘하느님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신 분이 물 위를 걸으면 시도할 용기가 납니다.

그 시도 안에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말로만 들어도 안 되고 인간이 아니어도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런 행복을 사는 사람과 머물 때만 증가합니다.

 

지혜는 지혜로운 자와 머물 때 성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어디에 머무십니까?”라고 물은 것이고 예수님께서 “와서 보아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를 배운 이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하는 사람과 함께 머무는 것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머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우리가 잘 알듯이 이탈리아 표준어의 시발점이 된 『신곡』(Divina commedia)을 쓴 사람입니다.

『신곡』은 단테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최고 공직까지 올랐으나 정치적 격변으로 추방당하여

이탈리아 각지를 유랑하다 라벤나에서 사망하기까지 자신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랑생활을 하며 지은 이 책은 ‘지옥-연옥-천국’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별히 지옥은 35살(당시 평균 연령이 70세) 피렌체의 최고 공직인 프리오리가 된 시점에서 ‘삼구’(三仇)로 길을 잃고 있었던 자신을 나타냅니다.

지옥의 입구에서 그는 세 무서운 동물을 만납니다. 

표범(육욕)과, 사자(권력욕)와, 암늑대(재물욕)가

사람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만든다는 교리를 표현한 것이고, 자신이 그런 처지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옥을 거쳐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 때, 그를 천국까지 인도하는 이는 ‘베아트리체’(Beatrice)라는 여인입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9살 때, 그리고 18살 때 딱 두 번 만났을 분인데도 그는 평생 그녀를 자신의 연인으로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9살 때 그녀를 본 순간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의 딸이 아닌 신의 딸처럼 보였다.” 그때 그는 감히 그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18살 때 다시 한번 천사와도 같은 그녀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부유한 집안으로 시집을 갔고 불행히도 1290년 향년 24세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만남에서는 잠깐 대화를 나눕니다.

단테도 1283년 이미 다른 여인과 결혼한 상태였고 3남 1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단테는 단 두 번의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음을 말하기 위해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1295)이란 책을 씁니다.

그 이후에 10년 동안 세속-육신-마귀에 빠져 지옥의 삶을 살기는 했지만, 자신을 천국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그 여인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그녀와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서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자리를 떴다.

외로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 고상한 여인에 관한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녀를 생각하면서 달콤한 잠에 떨어졌다.”

 

자신의 아내인 ‘젬마 도나티’에 대해서는 어느 책에서도 일절 언급이 없는 그가 단 두 번 만난 여인에게 어떻게 그런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날 그녀의 의상은 매우 고귀한 색상인 예쁜 주홍빛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가 달리고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해서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를 자신의 영혼과 결혼한 신이라 표현한 것이고 그녀를 심장에 품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것만큼 어떤 누군가를 심장에 받아들이면 그 누군가가 평생 그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그는 순수했던 시절, 자신의 심장 안에 들어온 그녀를 통해 다시 정화되어 천국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단테는 고귀한 사랑만이 그 사람과 함께 머물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천국으로 안내할 수 있다는 지혜를

평생을 거쳐 베아트리체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세례자 요한이고 베아트리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하면 그분이 심장 안에 머물며 우리를 가난으로 이끌고 이어 사랑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을 체험합니다.

먼저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삶으로 말하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신 그리스도께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마태 11,17)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는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 무심할까요?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더 고마워하고 사랑하는 것과 머물게 되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돈이나 쾌락, 명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과 반대의 길로 이끄는 세상의 세례자 요한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인 그리스도께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천국에 오르는 계단도 사라집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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