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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08 조회수 : 1660

내가 하느님을 생각 않으면 세상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한 말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은총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겨지지 않으면 가득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이 피를 흘리기 이전부터 이미 은총으로 충만하셨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피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성모 마리아를 깨끗이 하실 수 있으셨다면 그리스도께서 굳이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피 없이 유일하게 깨끗하시어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고 죄짓기 이전의 하와의 상태처럼 주님과 함께 거니는 분이십니다. 
 
성모님이 원죄가 없으셔야 하는 이유는 만약 그 인성을 예수님이 물려받으시면 예수님도 원죄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우리 죄를 위한 흠 없는 제물이 되게 하시기 위해 하느님은 그리스도께 당신 몸을 주실
새 하와인 성모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인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획돼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되어 죄에 물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 원죄가 없으신 특징은 어디서 드러날까요?
바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순종에서 드러납니다.
 
하와는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했고 그 후손들도 원죄를 입어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지만 성모 마리아만큼은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종의 중간에 성모님께서 하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기도의 단계에서는 ‘묵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성모 마리아께서는 천사가 일러준 하느님의 말을 깊이 묵상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묵상하셨습니다.
 
“이 인사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 묵상이 없으면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순종이 나오지 않으면 주님 종의 자격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묵상의 소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나오는 감정이 ‘감사’입니다.
저희 어머니에게 물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께서 “저 나병 환자들도 사는데, 넌 왜 못 사니?”라고 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불만에서 감사로 나를 이끕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나와야 보답하고 싶어 주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자아에 순종하게 되어 망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상태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원죄로 주어져 있습니다.
 
‘박화영’(2017)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박화영의 집에 모인 가출 소년 소녀들은 모두는 매일 라면을 먹고,
매번 담배를 피우고 동갑인 화영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화영에게는 단짝인 무명 연예인 친구 은미정이 있습니다. 
미정은 화영을 엄마라 부르며 갖은 일을 다 시켜 먹습니다.
화영도 미정이 만큼은 아껴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모든 아이에게 이용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엄마라고 불리고픈 화영은 특별히 미정의 남자친구인 영재에게 심한 구타와 모욕을 당하며 미정의 엄마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미정과 영재가 저지른 살인사건까지 자신이 다 도맡아주지만, 결론은 미정은 끝까지 화영이를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박화영. 이런 인물은 왜 탄생한 걸까요?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영은 어른들만 보면 대듭니다.
엄마가 돈을 안 부쳐줄 때는 새 남자와 사는 엄마에게 욕을 퍼부으며 돈을 달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모든 친구에게 이용만 당하고 교도소까지 갔다 온 화영은 또 가출한 소녀들을 자신의 집에 재워주고 라면을 끓여주며 계속 엄마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러며 말합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번 봤냐!”
 
부모와 관계가 안 좋은데 다른 이들과 관계가 좋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먼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줄 수 있는 분은 사랑으로 나를 낳고 창조하신 분입니다.
문제는 그분이 나와 함께 있다고 믿고 그분의 사랑을 묵상할 때 사랑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산다고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부모의 굳은살을 보아야 하고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묵상하지 않고 함께 살기만 하면 사춘기 아이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어도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기만 할 뿐, 진정한 관계는 맺어질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신도 부모가 되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이웃들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애완견’과 ‘반려견’의 차이를 아십니까?
애완견은 주인이 장난감처럼 여기는 개라는 뜻이고, 반려견은 주인이 사랑하는 개라는 뜻입니다.
박화영은 친구들에게 애완견이었습니다. 
왜 애완견이 되느냐면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화영이가 자신들이 아니면 갈 곳이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녀를 묵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박화영이 어머니를 이용할 뿐 묵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묵상하지 못하면 이웃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묵상하는 이는 언제라도 떠날 사람이 되기에 사람들이 붙잡으려고 묵상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나무 뒤에 숨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내 죄를 피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용만 할 뿐입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주님의 뜻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묵상하면 감사하고 감사하면 그분께 순종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신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 찾아보시러 가시는 길은 묵상한 자의 발걸음입니다.
이용당하지 않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아 그 사람에게 당당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상으로 말씀을 잉태한 이의 모습이고, 이 모습이 성모님처럼 원죄 없는 이의 모습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을 묵상하면 세상도 나를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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