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3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
우리는 기도할 때,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별거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많이들 불러주셔서 강의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자꾸 밖으로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공동체 생활에 소홀하게 되고, 어느 순간 강의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더군요.
할 수 없이 일정 기간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중히 거절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아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꼭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시며 이해를 해주셨는데, 한 수녀님께서는 정말이지 집요하셨습니다.
전화를 열 번도 더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찾아오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속으로 웃으면서 수녀님의 이미지가 복음서에 등장하는 끈질긴 과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불의하고 매정한 재판관과 끈질긴 과부가 한 판 붙었습니다.
재판관과 과부 둘 다 고집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더 집요하고 고집스러웠습니다.
결국 과부가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끈질김이었습니다.
결국 과부의 끈질긴 기도가 재판관의 불의와 사악함을 자비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사실 과부는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 뇌물을 제공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몇 번을 거절당한다 할지 라고, 가고 또 가고, 청하고 또 청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투견장에 들어간 큰 불독 한 마리처럼 말입니다.
그녀의 집요한 압박에 재판관은 점점 그녀 존재 자체가 귀찮아지게 되었습니다.
틈만 나면 찾아와서 징징거리며 졸라대니, 스트레스가 점점 치솟았습니다.
과부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한 재판관은 마침내 두손 두발 다 들고 만 것입니다.
과부의 끈질김 앞에 불의한 재판관도 두 손 두 팔 다 들고 도움을 주었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끈질기게 간청할 때 절대로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칩니다.
때로 우리를 좀 기다리게 하실지언정, 때로 우리의 조바심을 유발시키실지언정, 절대로 우리의 청을 거부하지 않으심을 믿어야겠습니다.
청하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해 손톱만큼의 의심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기도할 때,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부서진 마음과 꺾인 영을 안고 밤낮으로 청하고 또 청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과연 무엇을 끈질기게 청하고 물고 늘어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의 간절한 기도 지향들을 읽어보며, 어이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 지향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될 때도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좀 더 큰 기도, 더 하느님 뜻에 맞갖은 기도, 더 영적인 기도로 성장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빨리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 고통과 십자가, 실패와 상처 속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희망하기를 바라는 기도...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