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과 고통 받는 민중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명령합니다.
억압을 멈추시오!
불의가 정의를 능가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선포하다가 순교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헤로데 왕권의 타락 앞에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세례자 요한이 그랬습니다.
결국 그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다가 순식간에 깊은 지하 감방에 갇히게 되고, 헤로디아의 간계에 의해 참수 당하게 됩니다.
2018년 시성(諡聖)되신 전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로메로 대주교님(1917~1980) 역시 같은 노선을 걸으셨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폭력과 살상을 밥 먹듯이 자행했던 독재자에게 홀로 맞서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1980년 3월 23일 주교좌성당 강론대에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고통 받는 민중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간청하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명령합니다. 억압을 멈추시오.”
바로 그 다음 날, 한 괴한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거행하던 병원의 경당에 숨어들어
그를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요사팟 대주교님(1580~1620)의 최후도 정말이지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1609년 비잔틴 예식에 따른 동방 교회 사제로 서품됩니다.
1617년 러시아 비텝스크 교구 주교로 임명된 그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로마 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헌신합니다.
요사팟 주교님과 뜻을 달리하던 러시아 주교들은 로마 가톨릭이 러시아 민중에게 맞지 않는다며 대립주교를 임명하는 등 그를 축출하기 위해 다양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620년 교구 내 한 본당을 사목방문 하던 중 적대자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흉기를 소지한 적대자들은 요사팟 주교님이 사제관에 있으려니 하고 사제관을 습격했습니다.
요사팟을 호위하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일부는 살해되고 일부는 큰 부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던 때, 요사팟 주교님은 마침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끔찍한 비명 소리에 요사팟 주교님은 기도를 중단하고 사제관으로 달려왔는데,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지요.
저 같았으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났을 텐데...놀랍게도 그는 단 한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적대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어찌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저에게 불만이 있으면 저를 상대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저는 결코 숨거나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요사팟 주교님의 그 당당함 앞에 악한들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전세를 가다듬어 주교님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한 녀석은 몽둥이로 때리고, 한 녀석을 큰 도끼로 찍고, 또 다른 녀석은 창으로 찌르고, 마침내 그 중에 하나가 총으로 주교님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요사팟 주교님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어렵사리 오른 손을 쳐들고 적대자들을 향해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하셨고, 그들이 저지른 죄를 사죄하는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교회 일치 운동의 선구자였던 요사팟 주교님은 1867년 비오 9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셨는데, 동방 교회 출신 첫 번째 성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